'다리털 숭숭' 남고생들 수중발레 도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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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본 감독 야구치 시노부(35·矢口史靖)의 '워터 보이즈'가 지닌 매력은 상식 뒤집기에 있다. 남자 고등학생이 수중발레단을 구성한다는 뼈대부터 그렇다.

게다가 속살도 '전복의 미학'으로 일관한다. 남학생보다 더 우람하고 당찬 여고생이 등장하고, 여성이 되기를 갈망하는 남성들이 모인 게이 바도 나온다.

수중발레를 가르치는 교사가 수족관의 돌고래 조련사라는 점도 허를 찌른다. 학생들은 멋진 수영장 대신 수족관과 바다, 그리고 전자오락실에서 춤을 익힌다.

놀랍게도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고 한다. 물론 영화적 과장이 상당 부분 개입됐겠지만 역시 현실은 종종 상상을 뛰어넘는 모양이다.

주인공은 다소 덜떨어진 듯한 고교생 다섯명이다. 수영대회에서 꼴찌를 하다 여고생의 수중발레에 매혹된 스즈키, 기량 부족으로 농구부에서 밀려난 사토, 바짝 마른 체구에 불만을 느껴 근육을 키우려고 수영부에 자원한 오타, 수영은 전혀 못하나 수학 실력만큼은 천재 수준인 가나자와, 수줍은 성격이지만 남성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사오토메가 여름방학 동안 고된 연습을 통해 멋진 수중발레단을 만든다는 줄거리다.

여기에 알루미늄 음료캔을 단숨에 구겨버리는 완력을 지닌 여고생 시즈코와 스즈키의 풋사과 같은 사랑을 덧붙여 대중적 흡입력을 배가시켰다.

특히 '쉘 위 댄스'에서 직장의 스트레스를 춤으로 해소하는 소시민으로 나왔고 '으랏차차 스모부'에서는 8년 내내 패하기만 하는 스모 선수로 나왔던 다케나카 나오토가 학생들을 지도하는 돌고래 조련사로 출연해 예의 감초 연기를 유감없이 펼쳐보인다.

관점에 따라 '워터 보이즈'는 장난기가 지나치게 많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유치해 보이지 않는 건 야구치 감독의 경쾌하면서도 육중한 연출력 덕분일 것이다.

예컨대 흘러간 팝 명곡 '온리 유(Only You)'의 멜로디에 맞춰 물 속에서 팔과 발을 움직이는 고교생들을 상상해 보라.

몸은 어른스럽게 성숙했지만 속은 아직 여물지 않은 고교 3학년생이 대학입시라는 장벽을 앞두고도 수중발레를 배우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앙증맞고 귀엽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정도다.

사실 야구치 감독은 코미디에 각별한 재능을 보인다. 한국에서 '산전수전'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던 '비밀의 화원'(1996년)과 지난해 개봉됐던 '아드레날린 드라이브'(99년)에서 그는 수준급의 폭소극을 구현했었다.

'워터 보이즈'에서도 그의 색깔은 여전하다.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게 하겠다는 야구치 감독의 의도는 이번 영화에서도 성공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15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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