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존엄사 인정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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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만들어 봄철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도쿄(東京)신문이 3일 보도했다.

미국.유럽에선 존엄사를 법률로 인정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아시아에선 첫 사례가 된다.

여당이 준비 중인 법안에 명시될 것으로 보이는 내용은 ▶환자는 말기 암 등 불치상태에서 인공호흡기 등으로 생명을 유지할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갖는다▶환자의 뜻에 따라 과도한 연명조치를 중단한 의사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등이다.

몸이 건강할 때 본인의 뜻을 미리 밝혀두는 '존엄사 카드'도 도입한다. 장기적으로는 운전면허증에 장기이식 의사와 함께 존엄사 의사를 기입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일본에서는 존엄사 협회 회원 10만6000여명이 교통사고 등 불의의 경우에 대비해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선언문을 늘 휴대하고 다니는 등 존엄사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로는 의사에게 형사 책임이 따르게 돼 있어 의료 현장에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존엄사와 관련한 혼란을 겪고 있는 비율은 의사의 86%, 간호사의 91%에 달한다.

법안 청원운동을 주도해온 일본존엄사협회 시라이 마사오(白井正夫) 사무차장은 "의식불명에 빠진 환자의 존엄사 의사를 어떻게 확인할지, 가족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 의료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시설이 부족한 데다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당의 법안은 윤리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의원들이 당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 의사에 따라 투표하게 될 전망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 안락사와 존엄사

안락사는 환자가 고통 없는 최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주사를 놓거나 약물을 투여하는 것을 말한다.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합법화돼 있다. 물론 환자나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존엄사는 이에 비하면 소극적인 개념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도 산소호흡기 등의 장치를 활용하면 생명을 연장해 갈 수 있게 된 것이 배경이다. 이 경우 환자의 의사에 따라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은 존엄사에 해당한다. 존엄사란 용어가 확산된 것은 1980년대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인권의 일종이란 인식이 퍼진 덕분이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많은 나라에서 존엄사와 안락사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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