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이 남측 도발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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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은 서해교전을 미국의 사주에 의한 남측 도발이라고 엉뚱하게 제기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남북 장관급 회담을 제의하면서 서해교전에 사과한 것을 계기로 한·미·일과의 연쇄적인 회담 개최를 이끌어 냈다. 그래 놓고선 지금 와서 다시 서해교전 책임론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어제 백서를 발표, 북방한계선(NLL)은 불법·비법의 유령선(幽靈線)이라는 전제하에 "서해 무장충돌은 미국의 대조선정책에 따라 남조선 호전계층이 계획적으로 감행한 도발사건"이라고 뒤집어씌웠다. 북측은 그 주장의 중요한 근거로 꽃게잡이 일부 어선의 북방어로한계선의 월선 가능성을 보도했던 MBC 뉴스를 예시, 궁색함을 스스로 드러냈다.

북측은 또 남측이 NLL을 고수한다면 "전면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으리라는 담보도 없다"고 협박하고, 침몰 고속정의 인양작업을 위해 NLL을 다시 침범할 기도를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것은 북측이 1999년에 그은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의 합법성을 주장하면서 대미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이자, 남북 장관급 회담 실무접촉과 본회담에서 북측의 서해교전 책임자 문책 및 재발보장을 받으려는 남측에 대항하려는 얕은 술수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런 억지 주장과 사실 왜곡, 협박으로 서해교전의 진상을 뒤엎고 책임론에서 벗어나려 해선 안된다. 한국과 미국이 북측 궤변에 속고 그 협박이 무서워 NLL을 철회하고 침몰선 인양을 하지 않으리라고는 북측 스스로도 믿지 않을 것이다. 북측이 억지를 쓰면 쓸수록 북측에만 불리한 국제환경이 조성된다. 장관급 회담 실무접촉에 나선 우리 대표들도 북측이 이런 억지 주장을 펼 경우 즉시 철수,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과시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간 실질 대화가 이뤄질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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