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정가 '마일리지 스캔들' 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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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총선을 한달여 앞둔 독일 정국에 '마일리지 스캔들'이 몰아닥쳤다.

독일 유력 정치인들이 공무용 항공여행으로 얻은 보너스 마일리지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줄줄이 사임하는 등 궁지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고르 기지 베를린시 경제장관은 마일리지 사용(私用) 사실이 폭로된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전격 사임한 데 이어 정계은퇴까지 선언했다. 베를린 시의원도 겸하고 있는 그는 "비록 이것이 처벌대상은 아니지만 실수가 분명하다"고 잘못을 시인하며 용퇴했다.

마일리지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독일 하원 윤리규정이 '공무로 획득한 보너스 마일리지는 반납하고 공무로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

이에 앞서 지난주 녹색당의 쳄 외츠데미르 의원도 공용 마일리지를 개인용도로 사용한 데다 개인적으로 자문에 응한 대가로 홍보대행업자로부터 저리 융자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또 녹색당 소속인 위르겐 트리틴 환경장관과 루트거 폴머 외무차관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트리틴 장관은 특히 루프트한자 항공사로부터 누적 마일리지에 대한 보너스로 여행가방까지 받아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사적으로 사용한 마일리지는 개인여행으로 얻은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마일리지 스캔들'을 집중 보도하고 있는 빌트지는 루프트한자로부터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상당수 유력 정치인들이 조만간 줄지어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외에도 많은 의원들이 관행처럼 공무로 획득한 보너스 마일리지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스캔들이 주로 좌파 정치인들을 표적으로 하고 있어 '우익언론의 좌파 때리기'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집권 사민당 소속 볼프강 티어제 하원의장은 지난달 31일 루프트한자측에 서한을 보내 "특정 정치인의 탑승 기록을 빌트지에 흘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따져묻기도 했다.

이와 함께 티어제 의장은 "마일리지를 '실수'로 사용(私用)한 의원들은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하원계좌에 송금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하원의원 6백65명 전원에게 발송했다. 의도성이 없는 단순 실수는 문제삼지 않겠다며 '면죄부'를 준 것이다. 그러나 이번 스캔들이 사민당이 주도하는 적·녹 연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돼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민당 등 야당에 뒤지고 있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에게는 더욱 부담이 될 전망이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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