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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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모양을 형상화한 한자다. 24절기의 시작은 입춘(立春)이고 그 다음이 우수(雨水)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물이 강수(降水)인데, 보통 눈과 비로 나뉜다. 우수는 냉랭한 대기가 따뜻해져 강수의 형태가 비로 바뀌는 시점이다.

우수를 시작으로 대기 중의 습기는 비로 변해 대지를 적신다. 그래도 아직 차가움이 가시지 않아 얼음입자의 상태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동우(凍雨)다. 얼지는 않았어도 차갑기 짝이 없는 빗물은 찬비, 즉 냉우(冷雨)다. 굵기가 약한 가랑비, 또는 실비는 한자로 세우(細雨)다.

수만 마리의 말이 대지를 거침없이 달릴 때의 모습이 떠올려진다는 의미에서 붙인 말이 취우(驟雨)다. 마구 쏟아지는 소나기다. 그러나 이 비는 오래 내리지 않는다. 잠시 퍼붓고 난 뒤 바로 자취가 묘연해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소나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驟雨不終日)’다. 일시적인 현상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의미다. 갑작스럽게 쏟아진다는 의미에서 급우(急雨)라고 하는 비도 소나기의 일종이다.

소나기 형태지만 더욱 오래 퍼부어 피해를 내는 비가 사나운 비, 폭우(暴雨)다. 폭우는 종류가 많다. 내리는 비의 양이 많으면 그저 호우(豪雨)일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게 분우(盆雨)다. 큰 물동이를 거꾸로 기울일 때 쏟아지는 물처럼 비가 내린다는 뜻의 ‘경분대우(傾盆大雨)’에서 비롯한 말이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는 뇌우(雷雨)다.

매실 익을 때 내리는 음력 6월 전의 비는 매우(梅雨), 땅을 충분히 적실 정도로 내리는 비는 투우(透雨)다. 지표면을 뚫고 그 아래로 내려가는 비, 투지우(透地雨)의 준말이다. 사흘 이상 이어지는 비는 임우(霖雨)다. 임우는 장맛비를 뜻하기도 한다.

좋은 비는 때맞춰 적절하게 내린다. 이른바 ‘급시우(及時雨)’다. 이는 『수호전(水滸傳)』 양산박(梁山泊) 108두령의 첫째인 송강(宋江)의 별칭이기도 하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급시우는 단비, 즉 감림(甘霖)이다. 적절한 때에 한동안 내려 가뭄과 더위를 푸는 비다. 올여름의 비가 그랬으면 좋겠다. 불볕더위를 때때로 식혀주면서 내리더라도 큰 피해 없이 물러가는 그런 비 말이다. 장마철에 꿔본 꿈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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