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망명 8년' 자작시로 소회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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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을 희생해 8년간 삶을 연장했건만 죄만 더 무거워졌을 뿐…."

황장엽(사진)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997년 망명한 이후 남한 생활의 소회를 시에 담았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지인들과 가진 송년 모임에서 소개한 '마지막 기회의 날'이라는 자작시다.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 자격으로 건배를 제의하면서 그는 시를 읊었다.

"날은 저물고 건너야 할 강은 아득하건만 배도 사람도 보이지 않네"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길 잃은 망령의 신세" "사람이 채 되지 못한 채 태어났기 때문" 등 막막한 심정을 담은 구절이 많았다.

특히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말하는 대목에선 "책임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복수의 대상도 나 자신"이라며 자책의 심경을 표현했다. 황씨는 남한행 당시 북한에 부인 박승옥씨와 2남1녀를 뒀으나 망명 이후 그의 가족들은 물론 친척들까지 모두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황씨는 그러나 시 말미에서 "미련의 집요한 영혼은 한해만 더 마지막 기회를 달라네"라며 북한 민주화에 대한 각오를 다짐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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