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에 사기·불법 대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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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적자금 비리 특별수사본부에 적발된 부실 기업주들은 분식회계 및 사기·부당 대출로 자신의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까지도 회생 불가능한 수준의 부실로 이끌었다. 이같은 연쇄 부실은 결국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을 허비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번 수사는 굵직한 부실기업주들의 비리를 밝혀냈다는 평가와 함께 공적자금 비리의 일부분을 파헤치는 데 그쳤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비리 실태=나라종금과 이 회사 대주주인 보성그룹은 금융기관과 기업이 동반 부실화하면서 막대한 공적자금 손실을 초래한 사례다.

의류업체인 보성인터내셔널이 주력이었던 보성그룹의 김호준 전 회장은 1997년 나라종금을 인수했다. 그룹 운영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같은 해 11월부터 2000년 1월말까지 5천6백14억원이 나라종금에서 보성그룹 측으로 불법 대출됐다. 나라종금은 부실이 심화됐고, 대우그룹 부도에 따른 금융시장 악화에 따라 2000년 1월 영업정지됐다. 자금줄이 끊어진 보성그룹 5개 계열사도 7천여억원대의 부실채무를 안은 채 화의에 들어갔다.

나라종금은 현재 파산절차가 진행 중이며 부실정리 등을 위해 지금까지 공적자금 2조9백여억원이 투입됐다. 부실 기업주들에게 회계분식은 순간의 고통을 넘기는 마약 같은 것이었다. 이를 통한 사기대출은 결국 기업과 기업주 모두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오디오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 제조업의 선발주자였던 SKM(선경마그네틱)은 과도한 투자로 어려워진 경영 여건을 분식회계로 넘으려다 실패한 경우다. 93년 어려운 경영 여건에서 동산C&G를 무리하게 인수하는 바람에 부실이 심화됐다.

최종욱 전 회장 등은 자금 마련을 위해 1백40억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1천2백50여억원을 사기대출받았다. 이 돈은 동산C&G의 정상화에 투입됐지만 결국 2000년 11월 두 기업은 모두 부도를 냈다.

새한그룹의 이재관 전 부회장도 분식회계를 통해 1천48억원을 대출받았다. 새한그룹 역시 1조8천여억원의 부실채무와 함께 2000년 5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들 기업은 다양한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일부 정·관계 인사는 각종 이권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향후 수사 과제=검·경과 국세청·금감원 등이 참여한 특별수사본부는 약 7개월 간의 수사에서 공적자금 부실화를 초래한 기업 경영진 등을 사법처리하고 3백70억원의 공적자금을 환수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회계 및 대출에 대한 감독기관들의 연루 의혹이나 부실기업·금융기관이 퇴출 직전 정치권 등에 막대한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은 규명하지 못했다.

1백56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수십조원이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수사대상인 공적자금 규모(5조~6조원으로 추산)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사본부는 올 연말까지 공적자금의 조성·관리·집행에 관여한 기관·공무원의 비리와 정치권 로비 진상 규명에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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