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 계산에 국익 뒷전 정치권도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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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중 마늘협상의 정부 당국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기에 앞서 정치권·언론 등도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999년부터 중국산 마늘의 수입이 급증하자 2000년 4·13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정부 내 의견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당정협의를 통해 '수입마늘에 대한 긴급관세 부과조치'를 밀어붙였다. 다분히 마늘 농가 표를 의식한 행위였다. 국내 최대의 마늘주산지로 꼽히는 전남 신안·고흥과 경북 의성지역이 공교롭게도 당시 민주당의 최고위원·원내총무와 한나라당 원내총무 출신의 국회의원 지역구였다.

그해 3월 무역위원회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을 결정하고 재경부에 건의했다. 정치권의 서슬퍼런 요구에 재경부는 결국 6월 1일 세이프가드를 시행키로 전격 발표했다. 중국은 즉각 휴대전화 수입제한 등 보복조치에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협상이 타결됐으나 그 이후에도 국회가 한·중 합의 내용인 '2003년 이후 수입 자유화'부분을 추적한 흔적은 없다. 국정을 견제·감시해야 할 국회가 그런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최근 문제가 되자 '책임자 규명·문책'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자승자박이라는 지적이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 정당 모임에서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도록 힘쓴 사실을 '자랑'하며 이번에도 앞장서 싸워 확고한 대책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밝혀 이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언론도 한·중 무역 마찰이 일어나자 조속한 협상 타결만을 촉구했지, 그 협상이 세계무역기구(WTO)규정에 맞게 진행됐는지 등의 문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나아가 세이프가드가 끝나는 3년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노력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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