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아무리 레임덕이라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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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태복(泰馥)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경질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지 않겠다.(청와대는)왜 기용하고 왜 쉬게 하는지에 대해 본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송정호(宋正鎬)전 법무부 장관이 이임사에서 수사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는데.

"그것도 얘기하지 않겠다."

청와대 박선숙(朴仙淑)대변인은 12일 기자브리핑에서 제기된 7·11 개각의 후유증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청와대가 물러나는 장관들과 티격태격할 수도 없고, 국민에게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의 심각성을 부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내에서는 "아무리 임기말 정권이지만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개탄과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비서실에서는 "잘 나갈 때는 충성맹세를 하고, 그만두라니까 얼굴을 바꿔 공격하는 배은망덕의 사례들"이라며 ·宋전장관의 행태를 비난했다.

이태복 전 장관에 대해선 "외국 업계의 로비에 휘둘려 개각하는 정부도 있느냐"는 반문과 함께 "독선적인 성격으로 공무원들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복지 서비스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장관"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경기 광명과 서울 구로·금천 등에 출마하려고 끊임없이 움직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송정호 전 장관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두 아들이 구속됐다면 주무장관으로서 '면목없다'며 물러나는 게 동양적인 가치관에 맞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는 특히 宋전장관이 "싸워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줄 수는 없다"는 퇴임사를 한 데 대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개각 발표 두시간 후에 사직서를 제출한 이명재(明載)검찰총장에 대해서도 섭섭한 표정이 역력했다. 金대통령은 즉각 반려해 파문 확산을 막았지만 "잔칫날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金대통령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분석도 나왔다. 청와대 수석으로 있었던 이태복 전 장관에 대해서는 특히 그런 말이 많았다.

金대통령이 민주당을 떠나는 바람에 정치권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고, 현직 검찰의 청와대 파견제 폐지로 검찰을 조정·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란 얘기도 있었다. 한편 청와대측은 이번 개각파 관련해 김종필(鍾)자민련 총재와 의견을 교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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