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겪은 12시간의 더위·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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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상대 미국 연수단 32명 가운데 한명이다. 6일 오후 2시30분 뉴욕발 도쿄행 미국 노스웨스트사 비행기에 탔다. 그런데 탑승한 지 20분이 지나도록 에어컨에서 더운 바람이 나왔다. 한시간이 지나도록 기체 수리를 하고 있으니 기다리라고만 했다.

두시간이 지났다. 밀폐된 공간의 수많은 사람들, 더운 바람만 나오는 에어컨…땀이 비오듯 흘렀다. 잠시 후 갑자기 전원이 나갔다. 아찔했다. 곧 다시 전원이 들어왔지만 이젠 더운 바람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시간이 경과하자 승무원은 물 한잔씩을 나눠줬다. 전원은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땀 냄새와 아이들 우는 소리로 기내는 피란열차 같았다.

배고픔에 시달리다 오후 8시가 돼서야 어린이용 햄 샌드위치와 주스 한잔, 쿠키 한개를 받았다. 오후 9시에 드디어 비행기에서 내렸다. 비행기에 여섯시간 넘게 갇혀 있었던 것이다.

항공사 측에서 주선한 호텔은 아우성치는 승객들로 시장바닥 같았다.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우리 차례가 왔는데 방이 모두 찼다고 해 결국 다른 호텔로 옮겨야 했다. 결국 다음날 오전 2시에 방에 들어갔다. 저녁은 물론 먹지 못했다.

하지만 열두시간의 고생에 대해 항공사에서는 3분간 사용할 수 있는 국제 전화카드, 부가 마일리지 쿠폰, 할인권 한장을 줬을 뿐이다. 다음날 탑승 10분 전에 관계자가 미안하다고 한마디 한 것으로는 우리가 겪었던 더위·공포·배고픔에 대한 사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석천·경상대 정밀기계공학과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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