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분규 고질화 조짐 작년보다 75%나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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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김각중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등 경제 5단체장들이 9일 긴급 회동을 연 것은 최근의 노사분규에 대한 재계의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들은 특히 불법파업 등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방관적 자세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정부가 불법행위를 계속 방치하면 국민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재계는 주장했다.

◇크게 늘어난 노사분규=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일 현재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1백25건)보다 75.2% 늘어난 2백19건에 달한다. 월드컵 이전에 발생한 파업이 아직 진행 중인 장기파업 사업장도 82곳이다. 경희의료원 등 6개 병원과 금속연맹 소속 11개 업체 등 모두 1만여명이 50일 가까이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또 파업 중인 인천지역 택시노조 30개사 중 13개사는 휴업에 들어갔고,3개사는 사측이 아예 직장을 폐쇄해 버렸다.

파업 돌입을 결의하는 사업장도 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지난 3일 임시대의원회의에서 쟁의발생을 결의했고, 쌍용자동차 노조도 지난 6일 휴일 근무를 전면 거부한 데 이어 조만간 부분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강성노조로 알려진 조선업종 소속 사업장도 대부분 곧 본격적인 임단협을 벌인다. 민주노총은 10일 금속산업연맹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고, 25일까지 세차례에 걸쳐 노동탄압 규탄대회를 여는 등 사측과 정부를 압박키로 했다.

◇재계, 정부의 수수방관 비판=이런 상황에서 재계는 경제 5단체장 명의로 한 목소리를 내면서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재계는 1989년 이후 노사분규가 가장 심각한 해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방관하는 듯한 자세가 노사분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총 김영배 전무는 "정부가 물렁물렁하게 나오자 노동계가 더욱 강하게 나오고 있다"면서 "이 시점에서 재계도 맞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전경련 국성호 상무는 "두산중공업의 48일간 불법파업이 8일 타결됐지만, 불법행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 취소가 전제돼 있다"면서 "향후 노사 협상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홍순영 상무는 "일부 사업장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불법파업이 방관·방치되면 불법행위가 확산되는 빌미가 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올 들어 여러 차례 노사분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월드컵과 '레임덕'이 겹쳐 정부가 경제논리 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을 경계해 왔다. 은행의 주5일 근무제 시행도 이런 맥락에서 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노사간 이견 폭이 워낙 커 주5일 근무제가 표류 상황이 되자 정부가 재계 압박용으로 은행을 이용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경총 조남홍 부회장은 "주5일 근무제 도입은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노동계가 요구하는 기존 임금보전 원칙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계, 사측의 소극적 자세 비판=노동계도 노사분규가 지난해보다 심해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한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춘투 이후 노사갈등이 진정되는 국면을 보였으나 올해는 하반기로 이어지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측은 "기업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막대한 이익을 냈는데도 임금인상에 너무 소극적이라서 노사분규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김영욱·임봉수·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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