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의 기분내기가 위기를 부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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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제5보 (81~101)=흑81에 반사적으로 82 쫓아간다. 徐9단은 내심 상대가 82 대신 우하변 어딘가로 돌입해오는 게 싫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李3단의 스타일로 봐서 평생 이런 곳(82의 곳)을 거꾸로 밀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냉정하게 계산한다면 지금 반상최대의 곳은 우하 일대다. 이곳은 백이 먼저 돌입하면 부서진다. 흑이 먼저 구축하면 큰 집이 된다. 상변은 어떤가. 백진은 이미 철벽이어서 한수 더 두는 것이나 그냥 놔두는 것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徐9단이 부리나케 89 지킨 것은 그래서 당연한 한수인 것이다.

하지만 90은 어떤가. 李3단은 노타임으로 이곳을 두드렸는데 "두점머리는 죽어도 두들겨라"는 격언을 모른다 해도 이곳은 참 기분좋은 곳이다. 그러나 얼음처럼 냉정한 이성을 지닌 기사라면 이 수를 두기 전에 한번 생각해봤을 것이다. 90의 진정한 가치가 기분만큼 대단한가를 따져보았을 것이다.

90은 <참고도> 백1에 둘 자리.이곳은 A, B 등의 침투를 노리고 있어 손뺄 수 없다. 실전의 90은 그다음 두어도 됐다. 91마저 흑이 차지하면서 국면은 갑자기 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李3단은 하변이 너무 넓어 언제라도 부술 수 있다고 믿었지만 徐9단도 이곳이 마지막 밑천인지라 95의 강수를 구사하며 들어오는 돌은 모조리 잡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백의 타개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낙천적이며 자신만만한 李3단도 101에 이르러 드디어 다급하게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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