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 속에 숨었어요 도토리 기획, 이원우 그림 보리, 1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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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여름철 서해 바닷가는 목욕탕을 방불케할 만큼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그곳에 가고 싶다. 밀물일 땐 얕은 바닷물에 첨벙대며 즐겁고, 썰물일 땐 넓게 펼쳐진 갯벌을 뛰어다니며 조개·말미잘·불가사리·고둥 등을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신간 『뻘 속에 숨었어요』는 그 생명체들의 삶이 이뤄지는 공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세밀화 그림책이다. 도서출판 보리의 '어린이 갯살림'시리즈 제2권으로 앞서 나온 1권 『갯벌에 뭐가 사나 볼래요』, 3권 『갯벌에서 만나요』의 완결편이다. 생명체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지만 아이들이 당장에라도 갯벌에 뛰어들어 뻘 속에 뭐가 사나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우리나라 갯벌의 다양한 모습과 갯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그림책인 1권, 갯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생물 1백여종을 '펼쳐보는 도감' 형식으로 다룬 3권과 함께 보면 더욱 효과적이다. 기획팀과 화가가 서해 갯벌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꼼꼼히 살펴보고 만들었기 때문에 정확하고 생생한 정보에서 갯냄새를 확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특징은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시원스레 쭉 펼쳐지는 그림의 한 면은 갯바닥이고 다른 한 면은 뻘 속 풍경이다. 그 짜디짠 갯벌에서 자라는 나문재 나물, 작고 길쭉한 갯지렁이 똥, 작은 분화구 같은 낙지 구멍, 엽낭게가 먹이만 골라 먹고 뱉어 놓은 동글동글한 모래 뭉치들이 갯벌에 펼쳐져 있다. 또 참방게·흰발농게·펄털콩게·칠게가 파들어간 굴, 모래알과 부서진 조개껍데기를 붙여 만든 갯지렁이 관, 무엇에 놀랐는지 농게가 파놓은 구멍 속에 얼른 숨어든 말뚝망둥어, 뻘 속에 몸을 반 이상 묻고 사는 해변 말미잘 등 뻘 속의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놓은 갯벌 단면도도 흥미롭다.

말보다 그림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책이지만 몇 구절 안되는 글들은 아이들에게 갯벌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길게야 숨어라, 뻘 속에 숨어라./도요새한테 들킬라, 어서 빨리 숨어라./집게발이 보인다, 꼭꼭 숨어라." 이렇게 운율감이 살아 있는 글을 통해 갯벌의 생태계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도 살짝 일러준다.

맨발로 갯바닥을 걸을 때의 그 뭉클뭉클한 감촉, 발가락 사이로 개흙이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느낌은 왠지 생명체를 밟는 듯해 꺼림칙하면서 신기하기도 하다. 이 시리즈를 보면 '정말 갯벌은 살아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될 게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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