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서로 못 믿는 기아차 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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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 노조원 3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는 기아차 노조(금속노조 기아차 지부)가 주도했다. 기아차는 새 제도에 따라 유급 노조 전임자를 181명에서 19명으로 줄여야 한다.

1박2일간 진행된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끝났다. 하지만 노사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진 듯했다. 이 회사 노사는 최근 계속 날을 세워 왔다. 사측은 노조가 주말 특근을 거부해 지난달과 이달 총 2만여 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기아차는 지난달 중형 세단 K5가 내수 판매 1위에 오르는 등 호기를 맞고 있다. 모처럼 잡은 기회를 노조 때문에 날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회사가 고의로 K5 출고를 늦추고 노조에 덮어씌운다”고 맞받았다. 회사는 “미미한 숫자인 데다, 판매가 몰려 출고 지연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재반박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를 떠나 노사 관계가 이 지경이란 건 씁쓸한 일이다.

이번 일의 원인 제공자는 노조다. 법으로 정해진 타임오프를 어기라고 회사를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단 수용한 뒤 문제가 있다면 법의 보완을 요구하는 게 맞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자 “파업을 안 하면 보상하겠다”고 나온 회사도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돈으로 파업을 막겠다는 발상으로 들려서다. 재계·노동계 모두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그럴 돈 있으면 차값이나 내리라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있다.

9일 밤 노사 대치 현장의 사이에 난 길에는 많은 차량이 오갔다. 그중엔 기아차의 K5도 있었다. 운전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자신이 모는 차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진 않았을 것 같다.

지금 기아차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것은 노조 전임자 수도, 회사 표지석도 아닌 소비자의 신뢰다. 그러려면 노사가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거둬들여야 한다. 국내외 경쟁 환경이 ‘네 탓’만 하고 있어도 될 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선하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