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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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쇼'는 섬뜩하지만 그래도 피비린내를 풍기지는 않는다. 한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방송국에 입양돼 30년 동안이나 '생방송 인생'을 살게 된다. 가족·친구나 고향·학교 등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 전세계에 24시간 생방송하기 위한 세트에 불과하지만 본인만 이를 깨닫지 못한다.

지난해 개봉된 '시리즈 7'은 좀더 잔혹하다. 영화는 '적수들(contenders)'이라는 가상 TV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방송사는 무작위로 추첨한 시청자들에게 무기를 지급해 죽고 죽이는 살인게임을 벌이게 만든다. 출연 거부는 불가능하다. 승자는 생명만 지킬 뿐 달리 보상은 없다. 임산부·마약중독자·간호사·암환자와 평범한 18세 소녀가 '선수'로 선발된다. 방송사 카메라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의 목숨을 뺏으려고 광분하는 출연자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대가는 엄청난 시청률이다.

"모든 사람이 15분 만에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말에서 제목을 따온 '15분'은 또 어떤가. 각각 체코·러시아 출신인 두 주인공은 가게에서 훔친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살인·방화를 일삼고, 자신들의 범행을 찍은 테이프를 방송사에 1백만달러에 팔아넘긴다. 방송국 뉴스쇼 앵커는 테이프 방영으로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리면서 "저널리스트의 양심을 걸고 방영합니다. 진실은 승리하게 마련입니다"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미국에선 범죄자로 돈을 번다니까"라는 주인공의 대사는 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통렬하게 찌르고 있다. 얼마 전 TV에서도 방영된 영화 '8㎜'의 경우 실제 살인장면을 찍은 화면에 집착하던 갑부 관음증(觀淫症) 환자의 살인교사 범행이 소재였다.

일본의 한 방송사 기자가 절도범에게 돈을 주고 범행 현장을 촬영, 방영해 물의를 빚고 있다(본지 7월 4일자 13면). 방송사의 빗나간 시청률 경쟁이 원인이겠지만 일부 시청자의 질낮은 호기심이나 관음증도 일조했을 것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웃어넘길 것만은 아니다. 요즘 한국의 TV도 너무한다 싶은 장면이나 대사가 잦아진 느낌이다. 게다가 정치적 속셈이 깔려 있다는 구설에 오르기에 꼭 알맞은 보도마저 눈에 띈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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