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결승 오르자 '월드컵 늦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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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의 고2에 해당하는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가 학교에서 독일애와 싸웠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알아봤더니 한마디로 월드컵 한·독전 장외 라운드였다.

한·독전이 있던 25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한국 남학생이 태극기를 허리에 걸치고 등교를 했단다. 좀 짓궂은 독일 학생이 "축구도 못하는 것들이 웬 치마냐"고 놀렸다. 마침 이 학생의 엄마가 폴란드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아들 녀석이 "폴란드는 한국에 져서 16강에도 못 올라갔는데 무슨 큰소리냐"고 거들고 나섰다. 발끈한 독일애는 "난 독일인이다"라며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톡톡 쳤고, 화가 난 아들 녀석이 그를 밀쳤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교측의 배려로 수업을 중단한 채 한·독전 중계방송을 보면서도 신경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뒤늦게 독일에 월드컵 열풍이 불고 있다. 독일이 한국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비로소 좀 시끌시끌하다. 이날 밤 늦게까지 폭죽이 터졌고 여러 도시에서 흥분한 팬들과 경찰이 충돌, 부상자가 속출했다. 신문들도 월드컵 개막 후 처음으로 월드컵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4강 진출까지 월드컵 관련 기사는 별도 섹션에서야 큰 뉴스였지만 1면에서는 1단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독일이 결승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젊은 축구팬들이야 독일이 승리할 때마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시내를 달리기도 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아주 차분했다. 16강전 상대였던 파라과이를 꺾던 날 한 방송의 월드컵 특집프로는 도서관에서 공부에 여념없는 학생들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국 선수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잘 한다는 사람은 없고 모두 문제점만 지적했다. 애초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16강 진출이면 성공이라고 전망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루디 러 감독이 해설자들에게 "선수시절 헤딩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고 쏘아붙였을까.

결승에 진출하자 이제서야 칭찬도 나온다. 우승을 많이 해봐서 축구에 대한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성 때문인가. 아무튼 전국민이 하나가 돼 열광했던 우리와는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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