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부터 업그레이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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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 축구팀이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를 창조하자 정치권이 야단법석이다. 각당은 "월드컵 성공을 국운(國運)과 국력 상승의 기회로 삼자"고 입을 모은다. 나름대로 '포스트 월드컵'대책 마련에 부산을 떨고 있다.

한나라당은 25일 '업그레이드 코리아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월드컵에서 표출된 국민의 결집력과 자발적인 힘을 정치는 물론 사회 각 분야를 개선하고 수준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같은 날 민주당은 '한민족 재도약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국민 에너지를 최대한 결집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韓和甲대표)는 이유에서다.

정치권이 월드컵 이후 국가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험구(險口)와 비방 등 정쟁(政爭)의 쇳소리만 내는 데 열중하다 모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는 것이니 기대도 크다.

하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먼저 돌아볼 부분이 있다. 다름아닌 자기들의 문제다. 정치를 어떻게 바꾸고 업그레이드할 것인지를 먼저 고심하는 게 옳은 순서라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두 당은 국회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양당이 이미 국회의장을 자유투표로 뽑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만큼 의장 선출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도 중단해야 한다. 국민이 경기장에서, 길거리 응원에서 보여준 양보의 미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부정부패 청산도 실질적 해법을 찾을 때가 됐다. 히딩크의 리더십이 주는 교훈의 하나는 '기본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부패청산은 정치와 국가운영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양당은 말로만 청산을 외칠 뿐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한상진(韓相震)정책기획위원장은 "수백만 인파가 길거리 응원에 나선 데는 대중이 정쟁에 환멸을 느껴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우레같은 대중의 응원소리가 언제든 분노의 함성으로 바뀔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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