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의 열정 우리 70년대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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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탈북 동포 문제를 둘러싼 한·중 외교마찰이 시끄럽지만 두나라간 경제협력은 따로 움직이는 듯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민간경제사절단은 지난 6~13일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티베트 라싸(拉薩)까지 5개도시 2천6백㎞의 중서부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아 삼성·SK·한국전력·두산·코오롱·산업은행·외환은행·대한투자신탁증권 등 국내 대기업·금융사 대표와 현지 한국기업인 등 65명이 참여한 대규모 사절단이다.

이들은 7일 베이징에서 연례 한·중 민간경제협의회를 마친 뒤 '서부대개발'의 진원지인 이창(宜昌)·충칭(重慶)·청두(成都)를 거쳐 티베트 자치구 수도 라싸에 도착, 소감을 교환했다.

박용성(朴容晟)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사회를 맡았고 이형도(李亨道)삼성 중국본사 회장, 손병두(孫炳斗)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이종산(李鍾山)SK글로벌 중국본부장, 오수종(吳壽宗)북경천해공업유한회사 대표, 박월라(朴月羅)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경사무소장이 참석했다(무순).

토론자들은 '어려움이 여전히 많지만 기회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다음은 좌담내용 요약.

◇박용성 회장=느낀 점이 많다. 우선 'ASEAN+3'(동남아국가연합에 한·중·일을 더해 동아시아 경제블록을 만들자는 구상)에 중국이 냉담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중·일 3국간 자유무역협정(FTA)논의만 해도 중국과 일본이 워낙 개성이 강해 뭉치기 힘들 것 같다.

또 청두의 대규모 벤처단치처럼 첨단기술 육성의 의지를 읽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첨단기술이라면 정상금액의 몇배를 들여서라도 끝까지 투자하는 속성을 지녔다.

중국이 이런 식으로 하이테크를 육성해 우리를 따라잡으면 우린 앞으로 뭘 먹고 사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형도 회장=청두·충칭·이창 세군데를 투자목적으로 유심히 봤다.

물류나 구매력 측면에서 동부보다는 여건이 불리하지만 내륙지방 수요만으로 굴러가는 사업은 괜찮을 듯 싶었다.

서부대개발 관련 건설·토목과 시멘트·레미콘·철근·주철관 같은 자재업종이 유망할 것 같다.

물류비용 때문에 제3국 수출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쓰촨(四川)성의 소득이 낮다고 하지만 중심도시인 충칭·청두 일대는 예상보다 많이 발전해 있었다.

◇손병두 부회장=우리의 잠재적 경쟁국이란 면에서 중국을 살폈다. 경제개발을 위한 이곳 관리들의 열정과 태도는 우리의 1970년대를 보는 듯했다.

서부대개발의 토대인 삼협댐·고속도로·장강 수로 같은 인프라를 보면서 무섭게 쫓아 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항도 국제 수준이었다.

정보기술(IT)같은 첨단산업 분야의 해외 유학생들이 속속 입국해 정부의 창업보육으로 크고 있다. 한국의 경제단체나 정부가 중국진출 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노하우의 축적과 공유다.

◇오수종 대표=오랫동안 중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해 본 사람 입장에서 사고방식을 철저히 현지화하라고 권고한다.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다. 지역별로 상관행이나 문화·사고방식이 크게 다르다.

◇박월라 소장=중국 지방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봤다.

장기 비전은 어느 정도 제시하고 있지만 방법론이 미흡하다. 서부대개발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숙제이고 민영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중앙정부의 의지가 지방정부 관리들에게 뿌리내리지 못한 느낌이었다.

◇李회장=중국 비즈니스는 10년 전보다 리스크가 많이 줄었다.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베이징 올림픽 개최 등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게 가지 않으면 안된다.

남은 리스크는 진출기업들이 예습을 안한다는 점이다. 이젠 중국정부의 정책·행정 리스크보다 기업 자신의 준비부족 리스크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李본부장=특히 중국 서부처럼 개발이 덜 된 곳은 기회와 리스크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너무 일반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말고 규범화·국제화가 안된 틈새를 활용해야 한다.

◇吳대표=요즘 한국진출 기업을 보면 실패 확률이 10년 전과 비슷하다.리스크가 줄고 정보도 많아졌지만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체계적 준비가 여전히 부족하다.

라싸=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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