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조서 빛난 수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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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소위 '죽음의 F조'에서는 감독의 지략과 전략·전술이 생사를 갈랐다.

강팀만 포진하다 보니 예선 세경기 중 한 경기라도 패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보기에 스웨덴과 잉글랜드는 이같은 점에 착안해 철저히 대비를 했고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는 이런 측면을 소홀히 했다.

스웨덴과 잉글랜드는 철저한 수비 강화로 '패하지 않는' 전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가장 수비가 강한 팀이다. 스웨덴이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의 드센 공격을 차단하고 역습으로 골을 뽑은 것은 토미 쇠데르베리 감독의 지략이었다.

잉글랜드 역시 빠른 공격수인 마이클 오언을 보유하고 있지만 조별리그 통과의 가장 큰 고비였던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베컴의 페널티킥 골로 승기를 잡은 후 오언까지 빼면서 철저히 굳히기에 들어갔다.

반면 첫 경기에서 나이지리아를 꺾으며 순항했던 아르헨티나는 비엘사 감독이 철저히 공격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면서 무너졌다.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를 맞아 '선 수비 후 기습'으로 맞받아쳤고 공격 일변도의 아르헨티나 공격수들을 후반 극심한 체력 소모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마지막 스웨덴전에서 꼭 이겨야 하는 심리적 중압감과 체력 부담 속에서 남미 챔피언답지 않은 무거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지리아 역시 개인적 능력으로 보면 잉글랜드·스웨덴과 비교해 절대로 떨어지지 않지만 아프리카 축구의 공통적인 후진성, 즉 전술 운용의 유연성 부족이 탈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 패한 후 두번째 경기인 스웨덴전에서 수비에 많은 숫자를 두고 답답한 경기를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술 운용이었다.

카메룬이 독일전에서 한명이 많은 상태에서도 수비에 많은 숫자를 두는 전술적 후진성을 보인 것과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나이지리아는 반드시 이겨야만 실낱 같은 16강 진출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 있는 잉글랜드전에서도 수비 위주의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은 스웨덴과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동안 입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가 8강 진출의 변수가 될 것이다. 양팀이 죽음의 조에서 소모한 체력은 장기간 진행되는 월드컵의 특성상 우승권 진입의 큰 짐이 될 것이다.

남미예선 18경기에서 단 한번밖에 패하지 않은 우승후보 0순위 아르헨티나의 침몰을 지켜보면서 월드컵은 효과적인 전술·전략을 소화하는 팀만이 우승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중앙일보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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