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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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월 10일 오늘, 대구에서는 한국과 미국간 월드컵 축구가 열린다.

또 수십만에 달할 길거리 응원단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전국의 광장으로 몰려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바탕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다.

세대간 단절을 극복하고 하나의 목소리로 어른과 아이가 하나 돼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를 만들어가는 일은 한국에선 지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15년 전 6월 10일, 이날도 전국엔 인파가 넘쳤다. 하지만 이 때 전국을 뒤덮었던 분위기는 오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축제같은 왁자지껄함과 박수·환호·즐거움 대신 비장함과 격렬함, 팽팽한 긴장감이 전국의 하늘을 뒤덮었었다.

당시의 구호는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가 아니라 "독재타도" "직선제 개헌"이었고 여기에 화답한 것은 승리와 박수 대신 지독히도 매운 최루탄 가스였다.

그날도, 오늘도 수많은 외신기자들이 군중을 향해 연신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뜨렸지만 전달하는 메시지와 방향은 구호의 변화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1987년 6월 거리에 쏟아져 나온 인파와 2002년 6월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공통점은 분출하는 에너지다. 차이는 과거의 에너지가 군부독재, 부패, 현실적 절망 등에 대한 비장한 저항과 의식의 중압감에 짓눌린 것이었다면 현재의 에너지는 그 반대라는 점이다.

15년의 세월은 똑같은 거리를 메운 인파에게 비장함과 부담감 대신 즐거움과 가벼움을, 의무감보다는 참여의 흥분을, 그리고 깨뜨려야만 했던 존재 대신 개선하고 만들어가야 할 많은 도전의 대상을 던져주었다. 15년 전 무혈혁명은 학생들, 사회에 편입됐던 세대, '넥타이 부대'가 동참하면서 이룩됐다. 마찬가지로 길거리 응원의 열풍도 냉소주의적 문화에 빠져들었던 기성세대들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문화운동을 하는 젊은세대들과 함께 하면서 시작됐다.

80년 광주, 80년대의 집단적 시위문화에 익숙한 30~40대가 온라인을 기초로 한 새로운 형태의 대중운동과 결합하면서 '놀이처럼 참여하는' 신문화를 일궈낸 것이다. 이는 '노사모'와는 또 달리 80년대의 집단주의적·수직적 문화가 하나의 이벤트 혹은 목적·우상을 가지고 개인주의적·수평적 집단주의로, 축제의 문화로 변신한 데 성공한 현실주의적 사례며 한국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조용한 혁명' 중 하나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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