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코리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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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0년 독일 통일 직후에 남북한 통일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다. 당시의 국내여론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 터이니 점진적인 통일이 바람직하다는 통일 유보론이 대세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북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분단 비용 갈수록 눈덩이

우선 지난 12년 동안 남북한의 경제규모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게 됐다. 1990년에 남한 경제는 북한의 10배 정도였는데 올해엔 30배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북한의 국민총생산은 충청북도의 총 생산량 정도의 규모다. 이러한 남북한의 경제규모 격차는 미국과 한국의 규모 차이(약 20배)보다 훨씬 크다. 북한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국방비로 쓰고 남한은 2%만 쓴다고 해도 남한의 국방비는 쉽게 북한 국방비의 두배 이상이 된다. 무역이나 기타 생산량의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두 경제의 비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제는 12년 전에 비해 파산한 북한경제를 지원할 남한의 능력이 세배 정도 늘어난 셈이다.

규모 말고 질적으로도 두 경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되고 낙후된 경제이며, 아직도 스탈린 식의 중앙통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제도·효율성·기술수준·환경·삶의 질·투명성(부패) 등 나라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지표에 있어서 북한은 세계 2백여개 국가 중에서 거의 바닥에 가 있다. 지난 10년간 2백만명 정도의 북한 사람이 굶어 죽었다고 해외 여론들은 흔히 추측보도를 하고 있다. 북한 청소년들의 신체적 발육 상태가 형편없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은 명백히 실패한 체제이고, 북한 정권은 국민의 복지 차원에서 세계적으로 거의 최악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북한동포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북한 사람도 '코리안'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북한 난민과 연성화(軟性化)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볼 때 북한의 내부통제의 힘이 약화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실패한 체제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인내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통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2천3백만 북한동포들을 생각하면 통일은 빠를수록 좋다. 영양부족으로 뇌와 신체의 발육이 부진한 수백만명의 아이들을 나중에 떠맡을 생각을 해도 통일은 빨라져야 한다.

북한경제를 남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드는 소위 통일비용보다 국방비, 국가리스크, 주변국과의 교섭력, 통일 후의 통합효과 등을 생각하면 분단이 지속되는 데서 드는 분단비용이 더 클 수 있다. 또한 시간을 끌면 통일비용보다 분단비용이 더 커지게 된다. 통일비용은 유한하지만, 분단비용은 분단이 지속되는 한 우리가 계속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적·경제적, 그리고 전략적인 이유로 해서 통일이 빠를수록 좋다면 거기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고 일관된 정책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통합예산 미리 축적해야

통일에는 돈이 들 수밖에 없으며, 이 비용은 결국 우리가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돈을 축적하고 남북한 통합 후의 관리역량을 증대시켜 나가야 한다. 우선 1년에 10억달러, 또는 국가예산의 1%를 통합관리비용으로 축적해 나가되, 이를 점진적으로 늘려 10년 안에 50억달러 수준까지 높인다. 이 예산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프라 투자, 남한의 역량제고, 그리고 인근 국가에 대한 설득 및 통일지원비용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몽골 등과 협의해 북한 난민 수용시설을 이들 나라에 만들도록 우리가 지원해줘야 한다.

독일 통일 당시와 비교해서 한반도의 여건이 많이 바뀌었다. 남한의 경제적 능력은 크게 향상된 반면 북한은 형편없이 작고 가난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북한동포들을 계속 방치해 두면 통일 후에 복지비용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남북통합은 빠를수록 좋으나, 여기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지금부터 돈을 축적하고 우리의 통합역량을 늘려나가야 한다. 북한도 '코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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