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닥친 제조물 책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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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제까지의 소비자 보호 개념을 전적으로 흔들어 놓을 제조물 책임(PL)법 시행이 다음달로 눈 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법 제정 뒤 2년반의 유예기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들의 준비는 소홀한 게 현실이어서 법 시행이 몰고올 충격과 부담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PL법은 소비자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다치거나 재산상 손해를 보았을 경우 배상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그 책임이 대부분 기업에 넘어가고 피해도 배상해야 한다. 제조업체의 책임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법이 처음 시행되면 소비자의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일본은 1995년 PL법 도입으로 소비자들의 소송 건수가 시행 전보다 두배 이상인 1천건을 넘어선 경험이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그런 대로 이와 관련된 시스템 구축이나 직원 교육에 나서고 있으나 중소기업 사정은 한마디로 걱정이다.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제조업체 2백7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내 전담 조직을 갖춘 회사는 0.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PL법 도입은 국제적 대세로 부정적으로만 볼 때는 지나갔다. 제품의 품질 관리와 안전성 강화는 글로벌 경제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줄 것이다. 긴장만 할 게 아니라 PL 파고를 뛰어넘는 적극적 자세가 중요하다.

PL법이 시행될 경우 기업 입장에선 단순한 피해 배상만이 아닌 유·무형의 부담도 엄청나다. 국민도 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나 기업들은 제품의 연구 개발 단계부터 소비자 안전을 우선시하는 경영 등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한다. 중소기업들도 최소한 전담 요원 확보와 함께 책임보험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도 전문가 양성은 물론 분쟁 조정의 역할을 맡을 PL상담센터 등의 운영을 적극 지원하며 기업 활동에 위축이 가는 일을 최소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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