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발 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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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일 한국과 미국의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한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미국 제발 져라"며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패스트푸드나 청량음료 등 소비재 분야의 미국산 브랜드들은 한국인 직원들을 대구 구장이나 길거리 응원전에 보내 한국팀을 응원한다고 한다. 행여 한·미전의 승패가 반미 감정으로 연결될까봐 걱정하는 미국 기업들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엿보여 안쓰럽다.

최근 들어 일부 젊은이의 반미 정서가 미국 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진 적이 있다. 지난 2월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미국 선수의 위장된 몸짓 때문에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빼앗긴 사건을 계기로 번졌던 불매운동이 좋은 예다. 당시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미국 제품 불매운동 사이트가 1주일 새 1백20여개나 개설되면서 미국산 패스트푸드 업체들의 매출이 10% 이상 감소하는 타격을 받았다.

특별한 계기나 사건으로 특정 국가의 상품구매를 일시적으로 거부하는 불매운동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사소한 현상이 일시적 감정 배출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구조화할 경우다. 감정은 감정을 낳고, 보복은 보복의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가령 한·미전에서 어떤 불상사를 계기로 미국 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미국에서는 한국산 불매운동이 벌어질 경우 어느 쪽도 원치 않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 발발 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미국과의 무역수지에서 총 2백4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냈다. 이 흑자가 한국의 환란(換亂)극복에 가장 확실한 디딤돌이 됐던 것이다. 한·미전이 반미전이 될까봐 걱정하는 것 자체가 기우였음을 이번에 확실히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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