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급 올리고 수당 슬쩍 없애 … 중국 진출기업 임금 ‘조삼모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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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근로자에 대한 저임금을 지키기 위해 갖은 꾀를 쓰고 있다.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팍스콘 근로자 연쇄자살 사태 이후 임금 인상 압박이 심해지고 있지만 줄 것 다 주고는 수지를 맞추기 힘든 까닭이다.

홍콩 명보(明報)는 5일 “팍스콘이 기본급을 1200위안에서 2000위안(직무평가 거쳐 10월부터 적용)으로 대폭 올린 이후 주장 삼각주 일대 생산 현장에서 임금 인상 붐이 일고 있다”며 “하지만 기업들이 각종 수당을 깎거나 없애고 초과근무를 크게 줄여 실질적으로 임금이 줄었다는 근로자가 많다”고 보도했다. 중국 현지 신문에선 임금 인상 조치가 사실상 ‘속빈 강정(明升暗降·겉으론 승진했으나 내막을 알고 보면 좌천)’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영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보도에 따르면 팍스콘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한 직공의 경우 파업이 일어나기 전인 4월에 월수입이 1900위안(약 34만원)이었다. 기본급에 식대와 교통비, 월 1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 수당이 포함된 액수다. 하지만 파업 사태 수습 과정에서 회사 측은 기본급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초과근무 시간을 대폭 줄였다. 지난달 이 직공은 거의 매일 초과근무 없이 법정 근로시간(8시간)만 채우고 퇴근했다. 그 결과 손에 떨어진 지난달 월급은 4월 수입의 약 70%인 1300위안이었다. 수입만 줄어든 게 아니다. 회사 측은 정상 근무 시간의 생산성 향상을 독려하며 고삐를 바짝 죄기 시작했다. 1시간 평균 15개를 조립했던 이 직공은 이제 17개를 만들어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완구공장 지대로 유명한 광둥성 둥관(東莞)의 한 공장에선 기본급 200위안을 올려주는 대신 식대 150위안을 없앴다고 명보는 전했다.

포산(佛山)의 자동차 부품공장에서도 임금을 올려줬으나 개근 장려금을 폐지해 실질 소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공장의 한 근로자는 “회사가 우리를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대상인 원숭이로 생각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임금 인상으로 제조원가 상승 압박에 몰린 팍스콘은 최근 선전의 30만 명 규모의 공장을 허난(河南)성 허비(鶴壁)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30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는 허난성에선 팍스콘을 유치하면서 저임금과 안정된 노무관리 등을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 이전에 앞서 팍스콘은 허난성의 직공 10만 명을 뽑아 선전 공장에 보냈다. 조립과 라인 관리 등 조업 기술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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