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축구다』만나 캐스터 꿈 키우고 『피버 피치』읽으며 축구 마력에 풍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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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초등학생 때였을까. 아버지 책장에서 『이것이 축구다』란 책을 찾아냈다. 한창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던 때라 그런지 금방 내 눈을 사로잡았다.

축구규칙부터 가상 중계방송에 이르기까지 축구의 모든 면을 샅샅이 다뤄낸 나의 첫 축구책. 1972년 동양방송에서 펴낸 정가 5백원의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축구인의 꿈을 키워갔다.

그 책의 저자는 스포츠캐스터로 대선배이신 서기원 아나운서였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 역시 서기원 선배님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KBS에서 일하게 됐고, 입사 5년차였던 98년 또다시 선배님의 책을 만났다.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출간된 『비바월드컵』(동아일보사)은 축구를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새로운 가치로 풀어냈다. 민족주의 혹은 지역주의 성격이 가장 강한 스포츠로, 월드컵을 통해 4년에 한번씩 전세계 60억 인구를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리는 축구. 이런 인류 최고의 발명품 축구를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것도 다 이 책에서 큰 자극을 받은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은 과연 달랐다.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온 도시가 들썩이며 응원의 함성을 높이는 것도 대단했지만, 서점마다 책장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축구책들도 무척 부러웠다.

축구기술서에서 축구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까지 장르도 참 다양했는데, 특히 영국 프로축구팀 아스날의 골수팬인 닉 혼비가 쓴 자전적 소설 『피버 피치』(Fever Pitch)는 축구의 마력을 깨닫게 하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또 축구에 빠져 사는 나를 "좀 심한 것이 아니냐"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아내에게 "극히 정상적이고도 아름다운 것"이라며 설득할 근거가 돼 주었다. 한편 축구책이 '돈이 되지 않는 책'으로 꼽혀 신간서적에서 찾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 형편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했다.

월드컵이 시작됐다. 축구 열기로 온 나라가 달아오르고 있지만,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축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책들이 서고를 가득 채우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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