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연기·MC '팔방미남'- 김 창 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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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1면

김창완은 원조 키덜트(kid+adult·어린이로 사는 어른) 다. 그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요리하는 음식은 '부글부글' 끓지 않고 '보글보글' 끓을 것 같다. 땀도 '숭글숭글' 맺히지 않고 '송글송글' 맺힐 것이다. 어눌한 말씨 또한 '축축'하지 않고 '촉촉'하다. 내년이 우리 나이로 쉰(1954년생)인데 표정과 말씨 모두 파릇파릇하다.

산울림, 혹은 김창완의 이름으로 음반을 낸 게 모두 13장이다. 물론 '개구장이'나 '산할아버지' 같은 동요집이나 종합 선물 세트(히트곡 모음집)는 뺀 숫자다. 30~40대에겐 '아니 벌써'(1집)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6집) 정도로 기억되는데 20대에겐 '기타로 오토바일 타자'(13집)가 대표곡이다. 그 중 12집 타이틀곡에 호기심이 간다. 제목이 '불안한 행복'이다. 뭐가 불안하냐고 물었다. 세상이 불행한데 난 행복해도 되는지 걱정이라는 게 그의 대답이다.

행복한 사나이의 여정이 평화롭게 자전거 탄 풍경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외삼촌(장석준)이 감독한 영화 두 편에 퇴직금을 몽땅 날렸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두 편의 제목이 각각 '돈으로 목을 졸라라'와 '없어도 의리만은'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추억하는 그의 모습이 짓궂어 보인다.

산울림은 제1회 대학 가요제(1977년) 예선에서 일등을 했다. 팀 이름은 무이(無異)였다. '세상에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때 부른 노래가 1집에 실린 '문 좀 열어 줘'다. 그러나 본선의 문은 열지 못했다. 맏형인 창완이 이미 졸업을 한 뒤여서 자격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둘째 창훈이 만든 '나 어떡해'를 후배팀인 샌드 페블스가 불러 본선에서 일등을 한다.

그의 대중예술관은 특이하다. 대중예술은 스스로 자란다는 것이다. 그 태평스러움 속에 때묻지 않은 동심이 꿈틀댄다. 연예활동 반경 역시 '땅 따먹기'식이다. 가수로, 작곡가로, 방송 진행자로, 연기자로 거침이 없다. 종횡무진하는 이유가 뭐냐고 어이없는 질문을 날렸다. 대답 역시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불안해서'가 그의 대답이다.

그와 얘기하다 보면 조숙한 천재 소년과 마주한 느낌이 든다.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서도 소년 같은 해석을 한다. "에너지가 절약되거든요. 스파게티 한 그릇 열량이면 10㎞를 가거든요."

천진한 그에겐 언제나 바로 지금이 최고 전성기다. 10년 전에 물었을 때도 그렇게 대답한 기억이 난다. 술 마실 새도 없을 듯한데 의외로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술의 힘과 음악의 힘은 매우 비슷하다. 피아노 소리가 띵하고 났다고 치자. 그 소리가 나기 전의 공간과 그 후의 공간은 전혀 다르다. 술 역시 한 방울 몸 속에 똑 떨어지면 그 전후가 사뭇 다르다."

지금 그는 MBC 주말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에서 정형외과 의사 조남식을 연기 중이다. 그에게 연기는 무엇일까. "연기할 때 진짜로 내 모습을 본다. 감독이나 작가의 눈에 포착된 자신의 구겨진 모습에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의 구김살 없는 일상이 오히려 연기였을까.

곧 발표할 신곡이 '나도 네 나이였던 적이 있었지'다. 원래 제목이 '나도 스물 세 살이었던 적이 있었지'였단다. 스물 셋은 그에게 스무 살보다 더 불안한 나이다. 그가 처음 세상에 노래를 띄웠던 것도 스물 셋이었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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