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업씨 '봐주기 수사'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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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명재 검찰총장이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와의 전화통화에서 "(김홍업씨의 비리혐의를 밝힐 수 있는)증거만 확보되면 (월드컵 여부에 상관없이) 소환하겠다"고 말한 것은 홍업씨에 대한 강력한 수사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총장이 대통령 아들의 수사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홍걸씨 구속 후 정치권과 검찰 일각에서 "두 아들을 모두 구속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으냐"고 동정론을 제기해 논란이 벌어질 때도 총장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홍업씨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되 소환시기를 월드컵 이후로 미루겠다는 검찰 방침이 보도된 것을 계기로 검찰의 수사의지가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자 총장이 나서서 수사의지를 밝힌 것이다.

총장의 입장표명으로 당장 홍업씨가 소환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 강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대검 중수부는 홍업씨 돈의 흐름을 상당부분 파악하고 있는 아태재단 김병호 전 행정실장과 김성환 전 서울음악방송 회장 등을 월드컵 기간 중에도 계속 소환해 조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또 자금추적 전담반을 통해 이들과 관련된 참고인들의 계좌도 함께 뒤지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홍업씨가 지금까지 관리해 온 70억~80억원 중 이권청탁을 대가로 챙긴 돈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수사팀은 그동안 수사를 통해 홍업씨 주변에서 이권개입 혐의가 짙은 돈들을 찾아냈으나 홍업씨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확인하지 못해 고민해왔다.

이에 따라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에 홍업씨의 이권 개입 물증을 확보할 시간을 벌어보자는 의도에서 월드컵 후 소환 계획을 밝혔으나 그 의미가 수사의지 퇴색이나 눈치보기로 왜곡돼 총장이 나서 수사의지를 밝혔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월드컵을 이용해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혐의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힌 뒤 홍업씨를 불구속 기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산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홍업씨에 대한 강력한 수사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총장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홍업씨에 대한 구속수사 방침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이 강도 높은 수사를 다짐한 상황에서 홍업씨를 불구속할 경우 총장 개인은 물론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할 수 있을 것으로 검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총장 발언에도 불구하고 홍업씨의 소환시기는 월드컵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홍업씨 관련 계좌가 매우 복잡하고 방대해 총장이 전제로 한 '알선수재 증거'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점치기 어렵다는 것이 수사팀 관계자의 말이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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