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 등 독후활동 어른도 함께 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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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편지가 한 통 왔다. 볼펜으로 쓴 편지는 오랜만이다. 2년 전 가족이 모두 프랑스의 북부도시로 옮겨간 주훈이네. 주훈이네는 떠나기 전까지 어린이 책을 공부하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그림책을 무척 즐겨 보았던 그림책 예찬론자였다. 결국 그곳의 나이 어린 학생들과 어린이 책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긴 대체로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입니다. 도서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아요. 또한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시립도서관에 가는데 책·비디오·CD를 빌리러 많은 사람들이 와요. 저희 가족 모두 도서관 카드가 있는데 한 사람에 책 8권, 잡지 2권, CD 1개를 빌릴 수 있고 아이들은 무료이고 어른인 저는 1년에 3만원 정도의 회비를 내면 빌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책방 가는 일이 참 즐거웠는데 여기서는 도서관에 가는 날이 기쁩니다. 아이들 학교에서도 주말 금요일이면 책을 빌려줘요. 그래도 서점은 늘 붐비더라고요. 책을 보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 사람들로.…"

용기가 참 부러웠다. 어른이 되어서도 호기심은 계속되고 따분하지 않은 인생을 사는 모습이. 『호기심 많은 고양이』(비룡소)에서 새끼 고양이는 난생 처음 보는 거북이를 툭툭 건드려 보고 거북이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지극히 단순한 연필 데생에 두 동물을 관찰하듯 짤막하게 쓴 글이 안정감과 깜찍함으로 다가오고 새끼 고양이는 아이들과 비유된다. 그런데 내 주변에선 아이뿐 아니라 새끼 고양이 같은 어른들도 늘어간다.

처음에는 자녀 교육 내지 호기심으로 어린이책을 찾아 책방으로, 도서관으로 다니다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자기 생각을 나눈다.

이런 모습은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조약돌』(다산기획)을 그림자 인형극으로 만든 재은이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재은이네는 세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독후활동을 한다. 스탠드를 이용해 그림자 인형극도 만들고, 두루마리 벽지에 이야기 그림도 그리며, 베란다 유리창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림자 인형극을 공연하기까지 했다.

공연을 본 아이들은 그 책을 그냥 수많은 책 가운데 하나로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공연에서 봤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책을 열어 볼 것이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이런 어른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환경에서 우리 어린이들이 자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아이와 함께 했던 다양한 독후활동을 다른 아이와 나누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이런 분들은 다 안다. 내 아이만 좋은 책 읽히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마련해준 환경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을 유혹하는 온갖 것들이 놓여 있을 테니 말이다.

<어린이책 전문서점 '동화나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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