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겐 참 좋은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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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음달 10일 대구에서 격돌하는 한국과 미국전.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내가 이날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코카콜라는 전직원이 이 경기를 관람할 예정이다. 그런데 직원 가운데 미국인은 나 혼자 뿐인 것이다. 나의 이런 딱한 처지를 아는 친구들은 '어느 팀을 응원할 거냐'고 장난삼아 묻기도 한다.

내 아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한국 이겨라!'며 목청을 높일 것이다. 그는 한국이 세계 최강팀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 원칙은 세워놓고 있다. 두 팀 중 나의 도움이 절실한 팀, 즉 약한 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한테 배운 삶의 지혜다. 그는 또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는 언제나 위엄과 자부심을 잃지 않고 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축구경기 응원에 대한 생각도 외국인과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인들은 단체 응원을 흔히 하는데 외국인들은 이같이 무리지어 하면 규칙을 잘 따르지 않고 무질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 이런 고정관념을 바꾸게 한 일이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코카콜라는 7백77명의 한국 응원단을 파견했다. 당시 한국팀이 이기지는 못했지만 7백77명의 한국 응원단은 해외에 훌륭한 인상을 남겼다. 한 통신사 기자는 이와 관련, "한국인들은 그들이 경기장에 왔을 때보다 경기장을 더 깨끗하게 해 놓고 떠났다"고 소개했다. 경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는 훌리건들을 보아 온 유럽인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일이었다.

또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한국 응원단은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나는 당시 회사에서 보내준 응원단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여자농구 경기를 관람했었다. 미국팀은 이곳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인기가 있어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고, 한국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경기 도중 한국 선수가 상당히 위험한 동작으로 파울을 범했다. 경기장은 순간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한국 응원단 중 한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목소리로 어색한 정적을 깼다. 그는 "아임 소리(I am sorry)"라고 외쳤다. 경기장 안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 상당수 관중들은 되레 한국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바로 그런 한국의 응원단들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단일 민족이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그날 시드니에서 한국의 가장 자랑스런 대표선수는 스탠드에 앉아 자기가 사랑하는 팀을 위해 열성적으로 응원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실 자기 나라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한국 축구는 고향과 같이 친밀하다.

실제로 지금 나는 내 나라인 미국 대표선수보다 한국 선수에 대해 더 많이 안다. 한국 선수들의 경력과 장단점도 알고, 경기 때 무엇을 관심있게 봐야 하는지도 안다. 내가 다른 팀들보다 한국팀의 경기를 더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에는 한국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응원해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월드컵에 참여하는 다른 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월드컵은 한국에 다시 없는 기회다.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짧은 기간 중 응원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 분명한 것은 한팀을 제외하고 나머지 31개 팀은 우승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록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위엄과 자부심을 잃지 않을 것으로 본다. 또 각자가 어느 나라를 선택하고 응원하든지 모두 자랑스런 월드컵 대표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이번 월드컵 축구 응원을 통해 나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좋은 인상을 남겨주길 기대한다.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한국인의 모습과 스포츠 정신, 질서정연한 좋은 인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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