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업씨 수사도 '냉각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검찰은 24일 월드컵대회 기간(5월 31일~6월 30일)에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요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월드컵 기간 중에도 홍업씨 계좌 추적 등 수사는 계속하며 한주일에 한번 정도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브리핑은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월드컵대회 기간에 대통령 아들에 대한 수사 속보가 이어질 경우 축제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국가 체면도 깎일 수 있다는 명분론을 내세웠다.

검찰 관계자는 "한나라당도 정쟁(政爭)을 벌이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검찰이 정치적 쟁점을 유발시킬 수 있는 김홍업씨 등에 대한 수사를 강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방침은 월드컵 기간을 활용해 실리를 챙겨보겠다는 속셈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부터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대검 중수부 및 특검 수사-신승남 전 검찰총장 낙마-金대통령의 3남 홍걸씨 구속-타이거풀스의 대 정치권 로비의혹 사건 등이 이어져 오면서 검찰이 현 정권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줬다. 따라서 월드컵을 통해 냉각기를 가질 필요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홍업씨 소환을 월드컵 이후로 미룬 더 큰 의도는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할 경우 검찰에 쏟아질 비난을 우려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4월부터 두달 가까이 수사를 하고도 홍업씨가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챙긴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에 쫓겨 홍업씨를 조세범처벌법 등으로 사법처리할 경우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고 검찰의 수사능력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쏟아질 것이 뻔하다.

따라서 월드컵 기간만큼 시간여유를 갖고 이권개입 혐의를 밝혀내자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월드컵 동안 홍업씨 관련 계좌의 추적작업이 이뤄지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홍업씨 측에서 일부 돈이 대선 잔여금이라고 밝히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1997년 대선자금을 건드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박재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