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집반~7집반 덤 의외로 '덤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8면

덤이란 흑이 먼저 두는 효과를 집으로 환산한 것인데 최적의 덤은 과연 몇집일까. 단 한집 때문에 전략이 바뀌고 승패가 바뀌는 바둑에서 최근의 덤은 5집반, 6집반, 7집반 등 세개가 서로 자기 주장을 펴고 있다.

통계 역시 아무런 해답도 알려주지 않는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춘란배 세계대회는 7집반의 큰 덤을 채택했다.

1988년 잉창치(應昌期)배가 7집반의 큰 덤을 들고 나왔을 때 바둑계가 경악했던 것과 달리 이번 '7집반'은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다. 결과는 2회전까지의 16판 대국 중 흑승은 다섯번에 그치고 백승은 11번에 달해 백의 명백한 우위를 보여주었다.

일본의 덤은 아직 5집반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도 대부분의 대회가 5집반이다. 한국은 4년 전 LG배가 6집반 덤을 채택하면서 이후 6집반이 주류가 됐다.

유창혁9단은 "5집반의 경우 흑이 확실히 좋다. 6집반이라도 나는 흑을 쥐고 싶다"고 말해왔다.

공격적인 성향의 유9단은 선착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게 치는 편이다. 이창호9단도 포석이 편하기 때문에 흑을 선호하고 있다.

'4집'에서 출발한 덤이 7집반까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둑 기술의 발달과도 관계가 깊다.

20년 전만 해도 바둑판 위에서 귀가 가장 큰 곳이고 중앙은 작은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옛 바둑책인 현현기경(玄玄棋經)에는 "고수는 중앙을 차지하고(高者在腹), 중급자는 귀를 차지하며(中者在角), 하수는 변을 둔다(下者在邊)"고 적혀 있다. 최근의 바둑은 현현기경이 옳음을 증명하듯 중앙의 가치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덩달아 선착의 가치도 높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5집반의 경우 흑승이 압도적일까. 아니다. 통계는 바둑판 위의 느낌과는 영 다르다. ▶왕위전은 한국에선 유일하게 5집반 덤을 고수하고 있는데 지난해 본선 이후 결승까지의 대국을 조사한 결과 '표'에서 보듯 백이 17승, 흑이 15승을 거둬 오히려 백쪽이 우위를 보였다.

▶덤 6집반의 삼성화재배는 지난해 백승이 19, 흑승이 17로 역시 백의 승률이 약간 앞서고 있다. 6집반 덤의 원조인 LG배는 흑이 14승, 백이 13승으로 흑이 간발의 우위.

▶7집반의 잉창치배는 흑이 38승, 백이 35승을 거둬 흑이 약간 우세.

통계는 놀랍게도 승부가 덤과 무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일류기사 중 조훈현9단은 덤 한집의 차이를 그리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덤에 따라 전술이 변할 뿐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올해의 전적에서도 조9단은 백승(19)이 흑승(18)보다 많다. 그러나 유창혁은 전적에서 흑이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고(흑승 24, 백승13), 이창호도 비슷하다(흑승19, 백승13).

덤의 효과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적정선 역시 아직은 혼돈 속에 있다. 그러나 바둑 기술이 늘어갈수록 덤 또한 점점 늘어갈 것이란 점만은 확실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