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생각 사무치는 5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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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오후, 숨을 가누며 언덕을 올라온 선생님에게는 언덕위의 교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시원하게 보이는 모시 바지저고리도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흔들어대는 부채만이 조금의 바람을 일으킬 뿐이었다.

지금부터 만 36년 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경북 예천에 있는 대창고등학교는 3·1운동 직전인 1918년 대창학원으로 설립된 민족학교다.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내가 다니던 때 이 고교는 한 학년이 두반에 학생이 1백20명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오상부 선생님이셨다. 그 분은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여름 방학이라 텅빈 교실에서 '단독 과외'를 해주시기 시작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文豪)인 셰익스피어를 유달리 좋아하시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햄릿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그러나 과외시간은 달랐다. 선생님은 당시 전국의 내로라하는 일류 고등학교 학생들도 다루기 어려운 고급 영어문제집을 가지고 내가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을 쌓아주셨던 것이다.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리시면서 나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 주셨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그 특별한 땀과 노고에 대해 이렇다할 보답을 해드리지 못했다. 방학이 끝날 무렵 우리 집 과수원에서 딴 복숭아 한 봉지가 내가 해드린 것의 전부였다. 당시 나는 그야말로 시골뜨기였다. 대학 입학시험 문제의 유형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또 눈앞에 경쟁자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 몰랐다. 대학 입시에 관한 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선생님은 사랑의 등불이 돼주셨다. 내가 어두운 길을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던 날도 선생님은 지팡이가 돼주셨다. 그 분이 안내해 준 길을 따라 진눈개비 내리던 날 홍릉에서 시험을 쳤다.

합격 통보를 받고 선생님께 인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선생님은 주도(酒道)를 가르쳐 주시겠다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막걸리 파티를 열어 주셨다. 그리고는 학기가 끝나자마자 서울 어느 고등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그렇게 약주를 좋아하시던 선생님이 지난해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셨다. 얼마전 선생님댁에 가서 뵈었을 때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고 의식도 거의 없으면서도 아끼던 제자를 보고 본능적으로 눈물을 흘리셨다. 무의식 중에서도 다시 한번 스승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베이징에서 업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이 글을 쓰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스승님의 제자에 대한 사랑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부모님의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듯이 선생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마음 아파했다.

5월이면 생각나는 분,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하시는 분. 선생님이 의식을 회복하여 다시 한번 주도를 가르쳐 주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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