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업씨가 세탁한 16억 정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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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씨가 고교 동기인 김성환씨에게 건넨 18억원 중 16억원이 정밀한 돈 세탁 과정을 거친 것으로 밝혀졌다. 홍업씨 지시에 따라 당시 아태재단 행정실장과 여비서가 모두 16억원을 1천만~3천만원 단위로 잘게 쪼개는 수법으로 현금 또는 수표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검찰 발표에 우리는 분노와 허탈함을 동시에 느낀다. 우선 홍업씨가 무슨 돈을 수십억원씩 숨겨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태재단 전 상임이사 이수동씨 사건이 나자 홍업씨측은 형편이 어려워 김성환씨에게서 1억원을 빌려 씨에게 퇴직금을 준 것이라고 해명하더니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아들이 조직을 동원해 돈 세탁을 일삼아왔다는 것은 큰 충격이다. 돈 세탁은 마약이나 밀수·폭력조직 등 범죄집단이 자금 은닉을 위해 사용하는 또 다른 범죄행위가 아닌가. 이를 모를 리 없는 홍업씨의 돈 세탁은 범죄 여부를 떠나 도덕적·윤리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돈 세탁에 동원된 아태재단이라는 기구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새삼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의혹의 핵심은 홍업씨 자금의 출처와 조성 경위다. 돈 세탁 행위는 스스로 떳떳지 못한 돈임을 인정한 셈이다. 1997년의 대선 잔여금·당선 축하금 주장도 있지만 돈 세탁 시기가 지난해 초부터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은 누구에게서 무슨 명목으로 언제 얼마를 받았으며 총액은 얼마고 대가는 무엇이었는지 파헤쳐야 할 것이다.

밝혀진 비리 내용을 보면 홍걸씨보다 홍업씨 혐의가 훨씬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홍업씨는 '검찰이 수사해 찾아내라'고 버티는 모습이다. 김성환씨도 홍업씨 비리 부분은 일절 함구한다고 한다. 이제라도 홍업씨가 스스로 진상을 모두 밝히는 것이 정도(正道)다. 진실 공개와 참된 뉘우침만이 국민적 분노와 대통령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길임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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