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창조의 기반… 인식 바뀌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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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제 4의 물결 크레비즈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실패에 대한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실패론'이다. 실패를 개인의 잘못된 경험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자원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실패론이 정립돼 있다.

미국에서는 실패박물관이 설립될 만큼 실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시간주에 있는 실패 박물관 NPW(NewProductWorks)에는 무연담배·무색콜라·스프레이식 치약 등 그 동안 연구개발은 완료되었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된 수만여 점의 제품이 진열돼 있다.

1965년부터 37년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당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제품들이 세 개의 벽면을 둘러가며 세워져 있다. 식품 2만6천 여점, 음료 8천여점, 건강·미용용품 1만3천여 점, 가정용품 6천7백여 점, 애완동물용품 1천여 점 등이다.

이 박물관은 처음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코카콜라·미쓰비씨·프록터&갬블 등 거대 다국적 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까지 신제품 출시 전에 관계자들이 꼭 이곳을 거쳐간다.

일단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후 실패라는 쓴 잔을 맛보게 되면 막대한 경제적 비용 손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실패 DB 구축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이 작업은 그 동안의 실패와 관련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실패 지식 활용위원회를 설립해 과거의 실패 지식을 향후의 국가적인 활용방안으로 전환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일본은 특히 기존의 낡은 조직 관행으로 인한 병폐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면서 전면적인 실패 연구에 나서게 되었다. 전 일본 열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파동과 95년의 고베 대지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 사고를 겪으면서 일본은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이에 대비할 수 있는 해결점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자원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해 아직 발생하지 않은 문제들에도 유연성 있게 대처하기 위한 노력들인 셈이다.

한국과 미국은 실패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한국에서 실패는 나쁜 것으로 인식된다. 실패는 없어야 하고 실패를 하면 부끄러워 한다. 실패를 두려워 하고 실패가 생기면 당황한다. 실패는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실패한 사람은 새롭게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인식이 다르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인식한다. 실패는 당연히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며, 실패를 겁내 시도조차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 실패를 분석, 이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그래서 실패도 창조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한다. 실패한 사람은 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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