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G20 서울 정상회의에 주어진 역할과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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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각국의 재정을 건전화할 필요성이 크다는 데 합의했다. 앞으로 3년 이내에 각국의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국가부채비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도록 재정 건전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논의하는 최고위 기구로 자리매김한 G20 정상회의가 논의의 방향을 위기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에서 재정 건전화를 위한 긴축으로 틀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의 배경에는 지속적인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미국과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재정 긴축을 강력히 역설해온 유럽 국가들의 입장이 적당히 봉합된 측면이 강하다. 즉 미국의 요구대로 각국의 사정에 따라 성장을 위한 부양책을 당분간 유지하되, 유럽이 주장한 대로 재정 적자를 축소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는 합의를 표방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금융위기 직후의 일사불란(一絲不亂)한 국제공조와는 달리 각국의 정책기조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느슨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G20 내에서의 이 같은 갈등은 은행세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G20 정상들은 결국 은행세를 도입할 필요성은 원칙적으로 지지하되 시행 여부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G20 차원의 통일된 정책 대신 각국의 독자적 판단을 인정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G20에서 제기된 주요 의제에 대한 결론이 대부분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G20 정상회의로 미뤄졌다. 차기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우리나라로서는 부담이 많아진 동시에 기회도 커졌다.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의제를 조정해야 할 부담이 커졌으나, 여기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낼 경우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의 수립을 주도한 국가로 부상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우선 각국 거시정책의 종합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은행의 자본과 유동성 규제기준을 확정하며, 금융시스템에 영향이 큰 주요 금융기관에 대한 정책 권고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 무역자유화에 관한 보고서를 채택하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의 개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가 제기해 정식 의제로 채택된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구축 방안’도 구체적인 성과를 거둬야 한다. 하나같이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은 난제(難題)들이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G20 서울 정상회의에 대한 준비에 가일층 힘을 쏟아야 한다. 서울 정상회의는 G8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회의인 만큼 행사에 차질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 회의의 내용 면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둬야 한다. 서울 정상회의는 한국이 신흥국으로는 최초로 국제무대에서 지도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