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깨끗한 조스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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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패배한 직후 미련없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다시 한번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남겼다.

조스팽 전 총리는 6일 사임하기에 앞서 총리실 특별경비 2백76만유로(약 30억원)를 국가예산으로 이월시켰다.

조스팽은 "지난해 7월 1천5백55만유로였던 이 자금을 그동안 특별경비(3백5만유로)·총리실 화재복구비(5백79만유로)·정부활동비(3백96만유로) 등에 썼다"고 사용내역을 공개했다. 특별경비는 총리 경호와 장관용 촌지·식사·여행경비 등으로 쓰이는 일종의 비자금으로 국가예산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책정된 총리 활동비다.

조스팽이 그런 활동비 사용내역까지 낱낱이 밝힌 것은 지난해 7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호화 여행경비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돈의 출처에 세인의 주목이 쏠렸기 때문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개인 여행경비 37만유로의 출처가 문제가 되자 "1980년대 총리 재직시절 사용하다 남은 특별자금으로 충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스팽은 과세 없이 현금으로만 지급되던 각료 보너스를 각 부처 공식예산으로 돌려놓는 등 특별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는 이 자금을 국고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킨 것이다. 시라크가 '따뜻하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정직하지만 차가운 지식인'으로 불린 조스팽은 최장수 총리로 안정된 정부의 기틀을 마련했다.

90년대 초 부정부패와 정치적 권모술수가 난무했던 사회당의 당권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이런 그의 깨끗한 이미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화려한 몸짓이나 군중을 자극하는 선동술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분명한 정치철학을 갖고 있던 솔직한 정치인이었다"고 조스팽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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