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쓴대로 표가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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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은 지난달 실시된 최고위원 경선이 부패에 관한 한 "2000년 경선 때보다 더 심했다"고 폭로했다. 朴위원이 거론한 2000년 경선은 '돈 당대회'라는 비아냥 속에 "사모님들까지 나서 밥을 사고 교통비를 뿌렸다"는 말이 나오는 등 혼탁 양상이 극심했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朴위원은 검찰조사 등을 우려해 사실 적시를 자제했으나 모 원외위원장의 1천만원 수수설, 5만원이 든 음료수병설 등에서 이번 경선의 혼탁 수준을 유추할 수 있다. 낙선한 이규정 전 의원의 "돈 쓴 대로 표가 나왔다"는 주장도 상황을 짐작케 한다.

朴위원은 최고위원 회의에서 "당내 선거가 부패하면 큰 돈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정면돌파 없이 정치개혁을 바라는 것은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며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오죽했으면 최고위원 당선자가 뒤늦게 치부를 들추랴 싶은데 당내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朴위원의 외침을 주목하는 인사도 별로 없다. 개혁을 우선 지향점으로 삼고 그를 위해 이름 앞에 '새천년'까지 붙인 민주당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화갑 대표최고위원은 "당 선관위에 고발된 것은 한건도 없다"는 반박으로 朴위원의 폭로를 어물쩍 덮고 있다.

이러고 보면 최근 잇따르는 여권 인사들의 추잡한 비리 연루 의혹이 우연이 아니라는 감이 든다. 김대중 대통령 일가의 비리 관련 증언 등 메가톤급 뉴스가 폭주함에 따라 경선의 어두운 구석이 묻혀 지나가지만 정치발전 측면에서 절대 간과할 일이 아니다. 최소한 경선 과정을 자성(自省)하고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모양새라도 갖추는 게 민주당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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