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참여하니 확 달라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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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 이름이 걸려있는데 어떻게 모른 척하나."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김종학(77)할아버지는 집 근처 정목어린이공원 앞을 지날 때마다 두 눈을 부릅뜬다. 아이들이 놀기에 위험하지는 않은지, 공원에 심어진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핀다.

1984년 만든 3백평 규모의 이 공원은 올초 1억3천여만원을 들여 전면 개조 공사를 벌이면서 설계 단계부터 주민들을 참여시켰다.

흙먼지 날리는 모래 바닥을 알록달록한 고무 블록으로 바꾸고 인근 노인들을 위한 발지압장을 설치하자는 등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공사 과정에는 金씨 등 주민들이 명예감독관으로 나서 사소한 사항까지 깐깐히 감시했다. 지난달 29일 공사가 끝난 뒤에는 느티나무·목련 등 새로 심은 나무 20여그루에 각각 관리를 맡은 동네 주민들의 이름표를 달았다.

시행 3년째를 맞은 서울시의 '주민과 함께 어린이공원 만들기' 사업이 열매를 맺고 있다.

시는 만든 지 10년이 넘은 어린이공원 5백20개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계획을 2000년 발표하면서 설계·시공·관리 과정에 주민들을 참여토록 했다. 이 계획에 따라 지난해까지 46개의 공원이 새로 단장됐고 올해도 21개의 공원이 만들어 진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관계기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왜 우리를 끌어들이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공원 개조 사업에 주민들이 참여한 이웃 마을이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훌륭한 시설을 갖추게 된 것을 지켜보면서 "동네 일에 우리가 앞장서자"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울 중랑구는 지난해 11월 상봉동 상리어린이공원의 개조 공사가 끝난 뒤 지역 주민과 어린이 34명의 손도장이 들어간 장식 벽을 세웠다.공사에 참여한 주민들을 기념하고 공원을 내 집처럼 아껴달라는 뜻을 담기 위해서다.

시공 과정에 명예감독관으로 참여했던 주민 김종래(59)씨는 "공사를 마치고 손도장을 찍고 나니 내 집을 새로 지은 듯 기뻤다"고 말했다.

서울시 이춘희(春嬉)공원녹지과장은 "반응이 좋아 앞으로는 어린이공원 외의 다른 편의시설에도 주민들이 건설에 참여토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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