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씩 써" "돈 쓴 순서 당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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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이 돈으로 얼룩졌다는 얘기는 당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함부로 발설했다가는 정당법 위반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수 있고, 이는 곧바로 당의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감한 사안을 6일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이 건드렸다. 그는 지난달 27일 경선이 끝난 뒤 이런 문제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한번도 당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날 처음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당내 경선에서의 돈선거를 문제삼은 것이다.

물론 朴최고위원도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내 선거라는 특수성 때문에 금품수수 문제를 고발하기도 어려웠다"며 "그렇기 때문에 법조항이 실효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과연 이번 경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일까.

경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A씨는 "상당수 후보들이 지구당을 돌면서 사무국장·여성부장·조직부장 등에게 수십만원에서 1백만원 이상씩 돌렸다"면서 "몇몇 후보의 경우 이렇게 뿌린 돈이 적어도 20억~30억원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는 "특히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낙선 후보 B씨의 측근은 "원외위원장 중 특정 후보에게 지지 약속을 한 사람은 별도로 1천만원대의 돈을 받았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경선이 혼탁했다"고 주장했다.

"야당 시절엔 지구당 다과비 명목 등으로 50만~1백만원 정도를 내놓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이번 경선 때는 2백만~3백만원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영남지역 지구당 관계자), "C후보는 음료수 병에 5만원씩 넣어 대의원들에게 돌렸다"(낙선 후보 A씨)는 등 2000년 8·30 전당대회 때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돈이 뿌려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선에 출마했던 이규정(圭正)울산시지부장은 선거가 끝난 뒤 "돈을 쓴 순서로 최고위원 순위가 결정됐다"고 개탄하는 편지를 각 지구당에 보내기도 했다.

이번 朴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검찰이 조사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돈 경선'현상이 확산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인데도 검찰이 이를 묵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그래서는 경선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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