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풍광에 녹인 悲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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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마르티나'(사진)는 유려한 영상미가 한껏 돋보이는 영화다. 기후 변화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지중해의 맑고 아름다운 풍광이 마치 영국 화가 존 터너의 명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국내에도 개봉됐던 '하몽 하몽''달과 꼭지'를 통해 이미 감각파 아티스트로 자리를 굳힌 비가스 루나 감독은 지중해를 화폭 삼아 끝내 죽음으로 운명을 맺는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솜씨있게 그려냈다.

스페인의 한 해안 도시에서 교사와 제자로 만나 사랑에 빠진 우리시즈(조르디 몰라)와 마르티나(레오노르 발팅). 부유한 기업가 시에라(에두아르드 페르난데스)의 열띤 구애에도 마르티나는 가난한 국문학 교사를 선택한다. 어느 날 낚시 갔던 우리시즈가 폭풍우에 휘말려 행방불명되자 갓 낳은 아들과 홀로 남겨진 그녀는 시에라와 재혼한다. 7년 만에 우리시즈가 귀향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마르티나는 대담하게도 '두 집 살림'을 시도하고, 7년 만에 다시 불붙은 눈 먼 열정은 결국 이들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루나 감독은 이 '지상에 없는 사랑'을 그려내기 위해 철저하게 낭만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을 따라간다. 우리시즈는 시를 읊어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남자다. '오늘 일에 충실하고 내일 일에 상관 말자'는 그의 달콤한 속삭임은 그의 본질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임을 상징한다. 감독은 그의 실종 도 사실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암시를 던진다.

마르티나 역시 만만치 않은 로맨티시스트로 묘사된다. 그녀는 남편의 사망 소식 이후 시에라와 결혼하기는 하지만, 갑자기 돌아온 남편 앞에서 부와 안락함을 서슴지 않고 버린다. 요즘의 세태를 미뤄볼 때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과 아들을 버리고 무일푼의 옛 남편에게 돌아가는 그녀의 행동은 철부지 같은 점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 때문에 매우 비현실적인 내용이 돼버린 이 영화가 그래도 공허하지 않은 것은 마르티나 역을 맡은 레오노르 발팅 덕이다. 소녀와 요부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팔색조 같은 발팅의 매력은 반항기 넘치는 소녀에서 원숙한 귀부인으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뤄낸다. 18세 이상 관람가. 10일 개봉.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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