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처럼 걸으면 건강해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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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3일 낮 12시10분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자락. 한 남자가 짐승처럼 기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거꾸로 기어 올라가는 데도 보통 사람이 걷는 것만큼 빨랐다.

"인간의 질병은 직립보행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때문에 허리병·위장병이 생기고 항문에 피가 많이 몰리면서 치질도 생기지요. 원시시대 모습으로 돌아가 네발로 걸으면 항문이 위로 올라가고 각종 장기(臟器)가 제 위치를 잡으면서 병이 안 생깁니다. 호랑이가 치질에 걸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보건복지부 이준근 법무담당관(54·부이사관). 과천 관가에서 기인(奇人)으로 통하는 그는 호보(虎步·호랑이처럼 네 발로 기는 것)라는 운동을 창안했다.

그는 30년 이상 호보를 해왔다. 대학 시절 우연히 중국 소림사 스님들이 손을 땅에 짚는 동작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이 자세에다 네 발로 앞 뒤로 기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되 손바닥 대신 손등으로 기는 호보법을 창안했다.

과장은 매일 최소한 두 시간 가량 호보를 한다. 점심시간에 50분, 퇴근 후 한 두시간 가량을 투자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1995~97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정부 파견 시절 숲 속에서 호보를 하다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주민이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 출장 때 호보를 할 데가 마땅치 않아 호텔 계단에서 하다 경비원의 제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는 수요일이나 목요일 중 하루를 택해 '밤샘 수련'을 한다. 검단산이나 남한산성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밤새도록 호보와 걷기, 달리기를 한다. 한 잠도 안자도 괜찮느냐고 물었더니 "호보를 하면 할수록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고 했다.

그의 체력은 20대에 가깝다. 한 번에 팔굽혀펴기를 1천2백67회나 한 적도 있다. 지금까지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같이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새벽 두 세시에 일어나 두 세시간 동안 유(儒)·불(佛)·선(禪) 서적을 읽는다. 결가부좌한 채 단전호흡을 하며 책을 읽는다. 요즘엔 내공 입문서와 노자가 도(道)를 닦았던 과정을 담은 『서승경(西昇經)』에 빠져 있다. 『주역』 『단군천부경』 등의 고전은 몇백번 독파했다.

과장에겐 제자도 적지 않다. 84년 미국 유학 시절 유도동호회(과장은 유도 5단)에서 만난 미국인 빌 쿠퍼(45·미 8군 대령)가 수제자 격이다. 한달에 두어번 만나 유도와 호보를 즐긴다.

복지부 내에도 몇 명 있다. 워낙 힘든 운동이라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대학생인 아들 상희(21)·딸 상원(20)씨도 제자다.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은 없으나 호보는 어릴 때부터 강하게 시켰다고 한다. 그는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고 물을 많이 마신다.

"배가 부르면 욕망이 생깁니다.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하면 심사에 녹이 슬지 않습니다."

직립보행 이전의 인간을 상정한 과장의 호보법에는 원시의 순수함이 담겨 있는 듯하다.

글=신성식 기자,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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