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여성 배역 자유자재 어둡고 풍부한 음색… 오페라계 "新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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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바로크 시대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 가수)파리넬리. 카를로 브로스키(1705~82)가 본명인 이 음악가의 삶은 1995년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져 헨델의 오페라'리날도'중 아리아'울게 하소서'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최근 미국 태생의 메조소프라노 비비카 주노(31)가 영화'파리넬리'에서 주인공이 불렀던 아리아를 녹음해 화제다.

르네 야콥스 지휘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의 반주로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로 출시된 이 음반에는 현란한 아리아'옴브라 페델레'등 고난도의 노래들이 수록돼 있다.

사실 영화 '파리넬리'의 사운드트랙에 흐르는 노래는 미국 테너 데렉 리 래진과 폴란드 출신 소프라노 에바 고들레프스카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합성해 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로 만든 것. 수십 차례 녹음한 후 3천여회 편집을 거친, 첨단 음향기술의 산물이다.

비비카 주노가 파리넬리의 아리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폭넓은 음역에 걸쳐 고른 발성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노는 최근 세계 무대에서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는 메조소프라노 중 한 명이다. 알래스카주에서 태어난 그는 로체스터 대학에서 유전학을 공부하다 2학년부터 인디애나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데뷔 무대는 93년 밀워키 플로렌틴 오페라에서 상연된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이사벨라 역). 9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지나 역)에 출연,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앤서니 토마시니에게 "밝고 풍부한 고음에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극찬을 받았다. 어두우면서도 따뜻하고 풍부한 그의 목소리에서 평론가들이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68)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까지 출연한 오페라는 '줄리오 세자르''캐퓰릿가와 몬테규가''율리시즈의 귀환''위그노 교도' 등 22편.

그녀는 바로크에서 벨칸토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메조소프라노 중 한 명이다. 로시니 오페라에선 귀엽고 발랄한 여성, 헨델 등 바로크 오페라에서는 바지를 입은 남성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무대로 진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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