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당기는 관 능 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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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명쾌함, 아름다움, 명랑함, 소박함, 논리성, 솔직함.

미니멀 아트와 개념예술의 거장 솔 르윗(74)의 작품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뭔가 어려울 것 같은 미술사조에 속해 있지만 실제 작품은 지성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뜻일 게다.세계적인 작가 솔 르윗의 초대전이 서울 청담동 쥴리아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5월 26일까지). 출품작은 최근 10년간 제작한 회화· 조각·동판화 등 25점으로 미국 뉴욕의 솔 르윗 스튜디오에서 작가가 직접 골라서 보내온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리드미컬한 곡선으로 이뤄진 'SPLOTCH'(반점·얼룩이라는 뜻)조각 연작. 지난 해 미국 휘트니 미술관의 회고전에서 처음 선보였던 신작이다. 외관은 단순하다. 부드럽고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굴곡 위로 주황과 쑥색, 연한 갈색이 띠처럼 칠해져 있을 뿐이다. 추상 조각이 분명한데 색상과 표면이 묘하게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게 특징이다.

회화로는 관객들에게 친숙한 띠로 된 벽화형상을 담은 것도 있고 단순한 정육면체나 직육면체를 여러 각도에서 논리적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모두 과슈(불투명 수채물감)화다. 동판화들은 현란한 원색의 향연이다. 원색의 띠가 규칙적으로 포개진 작품이 있는가 하면 직육면체·정육면체가 다양한 크기와 색상으로 한 화면에 가득 차있는 것도 있다.

얼핏 봐서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단순하고 쉬운 작품들이다. 하지만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 그의 작품은 시각적인 무질서를 교묘하게 포함하고 있어 보면 볼수록 미묘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개념주의 미술가들은 합리주의자라기보다는 신비론자여서 논리로는 불가능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의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르윗은 1960년 미니멀아트와 개념예술 운동 사이의 가교역할을 했으며 70년대 이래 독창적이고 기발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개념적인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로 자리잡았다.

피카소 이후 가장 열정적이고 광범위한 활동을 벌인다는 그의 작품은 그래픽·사진·책·포스터·상업용 제품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02-514-4266.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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