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 '氣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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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바둑 외길의 이세돌(19)3단과 토익 9백20점의 대학생 기사 김명완(24)6단. 이 두 사람이 맞붙은 신인왕전 결승전이 1승1패로 팽팽히 맞서면서 점점 흥미를 끌고 있다. 대국 전만 해도 이세돌3단의 완승이 예상됐다. 이3단이 현역의 투사요, 정상급의 실력자라면 김6단은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며 외국 유학을 꿈꾸는 '절반의 기사'이기에 승부는 보나마나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첫판의 승자는 오히려 김명완6단이었다. 이3단은 지난 24일의 2국에서 흑을 쥐고 1백43수만에 불계승해 간신히 1대1을 만들었지만 우승자를 결정하는 마지막 한판이 어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3단으로선 진다면 망신이지요"라고 동료 프로기사는 말한다. 의무교육 외에 더 이상의 학업을 포기하고 바둑 외길을 걸어온 이세돌3단에게선 옛 조선의 장인(匠人) 같은 집념과 투혼이 느껴진다. 그의 모든 신경은 바둑을 향해 집중돼 있다.

이에 비해 김명완6단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고려대생. 다른 프로들처럼 적당히 대학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토익 점수가 말해주듯 그는 공부를 철저히 하는 실력파고 피츠제럴드의 고전에 심취하는 등 바둑 밖의 세상에서 인생의 길을 탐색하고 있는 꿈많은 학생인 것이다.

바둑계에서 이같이 두마리 토끼를 쫓는 사람이 우승컵을 따낸 케이스는 전무하다. 과거 서울대 법대 출신의 홍종현8단이 한때 도전자로 나서며 활약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으나 정상 정복에는 실패했다.

이창호9단이 대학에 가려고 했을 때 동료 선배들이 반대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바둑의 핵심은 '집중력'인데 대학생활을 하면서 그게 유지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같은 배경 때문에 이세돌과 김명완의 대결은 색다른 긴장감을 띠게 됐다. 김6단으로선 져도 그만이지만 이3단으로선 '지면 기록에 남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최종전은 5월 4일. 대체적으로 이3단의 승리가 예견되고 있지만 바둑 스타일을 놓고 한가지 불길한(?)분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김6단은 이3단에게 3승1패의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여기에 1승1패가 추가돼 현재는 4승2패. 이런 전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공격적이고 화끈한 이3단의 기풍이 실리적이고 끈덕진 김6단의 기풍과 상극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00년에 이미 MVP에 오른 이세돌에게 마이너리그격인 신인대회는 그다지 중요한 대회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신인왕전은 여러가지로 부담스럽고 신경쓰이는 한판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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