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 최성규 前총경 해외도피> 혼자서 했나, 누가 도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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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씨의 해외 도피를 둘러싼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경찰과 취재진을 따돌린 뉴욕 공항에서의 잠적, 그리고 그와 통화한 사실을 숨기려한 경찰청 이승재 수사국장의 행동 등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崔씨 도피 초기부터 제기됐던 '보이지 않는 힘'의 조직적인 비호 의혹도 그래서 더 짙어지고 있다.

◇별도 지휘기관 있나=국장이 崔씨와 통화한 사실을 사흘이 지나서야 이팔호(八浩)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는 것부터가 납득이 가지않는 대목으로 지적된다. 지난 14일 근무지를 무단 이탈하며 해외로 도피한 崔씨의 행동은 경찰 내에서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그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소위 '최규선 게이트' 연루 혐의를 받고 있어 더욱 그렇다.

崔씨는 해외 도피에 앞서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났던 점이 확인됐다. 따라서 崔씨 문제가 경찰 조직 차원을 떠나 특정 세력에 의해 조종됐으며, 崔씨가 전화한 사실을 공개하는 것도 경찰의 판단 범주를 벗어난 것이어서 늦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대통령 아들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그의 도피가 특정 기관의 별도 지휘로 움직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그것이다.

국장은 崔씨와의 통화 사실을 22일 공개했던 이유에 대해 "기자들이 崔씨와의 통화 여부를 자꾸 물어와 계속 숨기다간 나중에 큰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공개했다"고 말했다. 가능하면 끝까지 숨기려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 차원의 은폐 가능성도=만약 그런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면 경찰 차원에서 崔씨의 도피와 관련된 내용을 은폐하려 했을 가능성도 없지않다.

청장은 통화사실이 알려진 뒤 "두 사람의 통화 내용에 특별한 것이 없어 국장의 보고 지연이 별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안의 중대성이나 일반의 관심 정도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다.

특히 국장은 崔씨와 통화 이후 청장과 여러 차례 전화를 하며 뉴욕 JFK 공항의 조치 사항 등을 지시받았고 20, 21일 아침 청장이 주재하는 간부회의에도 참석했다. 물론 崔씨 문제가 회의의 주요 안건이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국장이 줄곧 통화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경찰청 감사관실 관계자는 "보고 지연 사건이 별다른 문제점이 없다고 판단되므로 자체 진상조사 등을 벌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이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거나 고의로 문제를 축소시키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통화내용도 의문=8분간 이뤄졌다는 통화에서 崔씨의 소재지조차 묻지 못했다는 국장의 설명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崔씨 출국 이후 경찰이 가장 많은 노력을 쏟은 것이 崔씨의 소재 파악이었기 때문이다. 해외 주재관들에게 지시해 崔씨의 출입국 사실을 조회했으며,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경찰의 협조를 받아 호텔 등을 수색하기도 했다.

따라서 崔씨와의 통화에선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첫 질문이 되는 것이 상식이다.

국장의 "崔씨에게 언론 등이 제기한 의혹 등에 대해 묻고 자진 귀국을 설득하던 중 崔씨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바람에 소재지를 묻지 못했다"는 설명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국장이 공개한 崔씨와의 통화 내용이 崔씨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 일색이란 점도 석연치 않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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