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회계법인 '감사의견'정정 공방 효성기계 퇴출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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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증권거래소와 회계법인의 밀고 당기는 법규 공방 탓으로 한 상장기업이 거래소에서 퇴출 될 위기에 처했다.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효성기계가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거절' 감사의견을 받은 것은 주총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전. "화의업체로 채무 재조정을 추진 중인 효성기계의 채무 재조정안에 대해 주 채권자인 한빛은행이 동의하지 않고 있어 생존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증권거래소는 올해부터 상장 폐지 요건을 부쩍 강화해 '의견거절'이 나오면 바로 정리매매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을 들어 효성기계 주식이 4월 8일 정리매매에 들어간다고 공시했다. 사실상 퇴출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이 '의견거절'을 낸 바로 다음날인 3월 30일 한빛은행이 효성기계의 채무 재조정안에 대해 일괄 약정을 체결했다.'의견거절'의 사유가 아예 사라졌던 것이다.

이에 따라 회사측이 삼일회계법인에 감사보고서를 고쳐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삼일 측은 "회계감사준칙에 주총일 이후에 발생한 일에 대해선 정정 보고서를 낼 수 없다고 돼 있어 응할 수 없다"면서 "다만 의견거절 사유가 해소됐다는 확인서만 써주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급해진 효성기계측은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해 준 확인서를 들고 거래소를 찾아갔지만 이번에는 거래소가 퇴짜를 놨다. "'정정 보고서'를 정식으로 가져와야만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효성기계는 지난 4일 상장폐지 철회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것이 지난 10일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져 정리매매 절차는 중단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증권거래소나 삼일회계법인 모두 종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거래소는 "정정보고서를 낼 수 있음에도 공신력 때문에 꺼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정보고서만 나오면 바로 정리매매 취소공시를 낼 것"이라며 화살을 삼일측에 돌리고 있다.

하지만 삼일회계법인은 "감사 과정에서는 충분히 적정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라 봤지만 의견을 낸 당일 날 분위기가 급속히 나빠져 '의견거절'을 낼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 와 정정보고서를 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효성측은 법원에 본안 소송을 낼 예정이며, 거래소는 재판 결과에 따라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효성기계 주식의 매매는 중단된다.

한편 효성기계 주주의 54%는 일반 소액투자자들이어서 정리매매가 확정되면 큰 손실이 우려된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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