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물 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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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폴 발레리(1871~1945), 「물 예찬」 전문 (박은수 역)

한 둘 아닌 사람들이 술을 노래했다.

자신의 도취를 시적 감흥으로까지 높여, 자기 넋이 기다리던 진한 술 잔을 신들 쪽으로 내민 시인들은 무수하다.

아주 값진 술은 그런 칭찬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물을 모독한 사람들은 얼마나 엄청난 배은망덕이고 얼마나 큰 잘못인가!…

거룩한 총명, 투명한 바위, 생명의 불가사의한 원동력, 만능인 물아, 나는 기꺼이 끝없는 연도로써 너에게 경의를 표하겠다.

나는 조용한 물을 말하겠다, 그것은 경치들의 더할나위없는 호사이며, 물은 거기다 절대적인 고요의 자리를 펴고, 그 순수한 수면 위에서는 비추어진 만물이 저 자신보다도 더 완벽하다. 거기서는 자연 모두가 나르시스가 되어, 자기를 사랑하고…

움직이는 물, 부드럽고 사납게, 스며들며 또 놀랍도록 천천히 훼손시키며, 제 무게로 또는 제멋대로인 흐름과 소용돌이로, 인개와 비로, 시내로, 큰 폭포와 작은 폭포로, 바위를 만들고, 화강암을 닦고, 대리석을 갈고, 조약돌을 무한정 둥글리고, 제가 만들어낸 모래 모두를 얼러가며 푹신한 자락과 편편한 모래톱을 마련하는 물. 물은 단단한 땅의 어둡고 거치른 모습을 다듬고 갖가지로 둔갑시키고, 조각하고 장식해준다.

여러 모양의 물은 구름떼 속에 살고 심연들을 메운다; 눈이 되어 양지바른 봉우리들 위에 앉았다가 순수한 물로써 흘러내린다; 눈은 멀어도 자신의 야릇한 확실성만 믿고, 제가 아는 길들을 따라, 자신의 최대량인 바다를 향해 막무가내로 내려간다,

때로는 물이, 눈에 띄어 뚜렷하게, 빨리 또는 느리게, 수수께끼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자신을 피해 가지만, 그 중얼거림은 용솟음치는 여울의 울부짖음으로 느닷없이 바뀌다가, 제 안개 속에 무지개를 거는 폭포들의, 닥치는 대로 으스러뜨리는 눈부신 폭포들의 영원한 우뢰 소리로 녹아들고 만다.

그러나 때로는, 숨어서 땅 밑으로 몰래 스며들어 나아간다. 광물 덩어리들을 탐색하고 그 속에 비집고 들어가 더없이 괴상한 길들을 튼다. 심한 어둠 속에서 자기를 찾다가, 자기를 만나 자기 자신과 합쳐진다; 뚫고 스며나오고, 파헤치고, 녹이고, 바위를 벗기며, 제가 만들어내는 미궁에서 길도 잃지 않고 용케 행동한다; 그리고 나서 물은 파묻힌 호수들 속에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대홍수보다도 더 오래된 눈먼 물고기들과 연체동물들이 사는 지옥의 냇물들이 흘러나오는 캄캄한 대성당들, 그 흰 대리석 기둥들이 되어 엉기는 오랜 눈물로 물이 먹여살리는 호수들 속에서

이 이상한 모험들에서 물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아보았는가!… 한데 물의 알아보는 방식은 별나다. 물의 본질이 기억이 되는 것이다: 물은 제가 스치고 적시고 굴린 것 모두의 어떤 흔적을 붙잡아 그것과 동화하는 것이다: 제가 구멍 뚫은 석회암의, 제가 씻어 준 광맥의, 저를 길러 준 푸짐한 모래의 흔적을 말이다. 물이 햇빛에 솟았다 하면 물은 제가 지나온 바위들의 태고의 힘들을 온통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자들의 동강이들을, 순수에너지의 요소들을, 땅속 가스의 거품들을, 그리고 때로는 땅속의 지열을, 물은 저와 함께 끌고 다니는 것이다.

물은 마침내 솟아오른다, 동분서주의 보물들이 배어들어가지고, 삶의 필요들에 몸바치며.

모든 삶의 이 본질적인 요소를 어떻게 숭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삶이란 유기화된 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납득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

풀 한 포기를 살펴보라, 큰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감탄하라, 그래서 그것이 공중에 흘러나오는 한 줄기 세워진 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알아보도록 하라. 물은 나무를 통해 빛을 마중하러 나아간다. 물은 땅의 소금 얼마를 가지고, 햇빛을 사랑하는 형상 하나를 스스로 그려낸다. 물은 가벼운 손들 달린 그 흐르는 힘찬 팔들을 우주를 향해 내밀고 뻗친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은 정착한다. 아주 싱싱한 물요정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삶이 자리잡고 앉아 둘레를 바라보게 되는 그 거룩한 지점을 표시해주는 것은 바로 물요정이고 샘물인 것이다.

물의 도취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은 바로 여기서다. 마시라!… 마시라… 진짜 목마름은 순수한 물로만 가시게 마련이다. 유기체의 진짜 욕망과 본원의 액체와의 일치 속에는 진정한 그 무엇이 있다. 목마르다는 것은 바로 그 딴 것이 되는 것이다: 타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마름을 풀어야 하고, 전과 같이 되어야 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요구하는 것을 이용해야 한다.

말투 자체가 물예찬들 투성이다. 우리는 진리에 목말라 있다고들 말한다. 우리는 어떤 연설의 투명함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때로 말의 여울물을 퍼붓기도 한다…

시간 자체도, 우리에게 시간을 그려 보이는 모습을 물의 흐름 속에서 길어내었다.

나는 물을 숭배한다.


강물이 땅 속으로 들어갔다가 땅 위로 솟아오른 것이 나무다. 땅 속이 어둡고 답답해서 햇빛을 마중하러 나온 물줄기가 나무다. 햇빛이 좋아 햇빛의 형상을 흉내 내고 있는 물이 나무다. 공중으로 솟아오른 힘으로 우주까지 팔을 내밀고 뻗은 것이 나무다. 나뭇잎은 물에서 솟아난 햇빛. 열매는 물에서 솟아난 햇빛의 농축액. 낙엽은 햇빛이 마른 물. 겨울나무는 땅에서 솟은 큰 고드름.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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