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우리 교육, 따뜻한 눈으로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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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03년 시행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의 '학업 성취도 국제 비교(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취도가 문제해결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이고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 비교(TIMSS)'에서는 수학 2위, 과학 3위라는 소식이 잇따라 발표됐다. 그런데 결과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보다 냉소가 주류를 이루는 것 같다. "대학 입시에 떠밀려 공부한 결과이니 자랑이랄 것도 없지" 또는 "학교에서 잘 배워 그런가, 학원 다니고 과외받은 덕분이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 학생들의 높은 성취도는 뉴스가 아니다. 4년 시차를 두고 시행된 1995, 99년의 TIMSS나 2000년의 PISA에서도 계속 상위를 지켰다. 우리의 교육은 두 마리 토끼인 '수월성'과 '형평성'을 조화롭게 만족시킨다. 높은 성취 수준을 통해 '수월성'을 입증했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생의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편이므로 '형평성'에서도 합격점이다.

PISA는 교과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가 아니라 학생들이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소양(literacy)'을 측정한다. 1위를 차지한 PISA 문제해결력에는 일상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참신한 문항이 다수 포함돼 있고, 수학과 과학도 정당화 근거를 제시하거나 설명과 해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를 위해 반복적으로 연습해 온 문항과는 차별화되므로 사교육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PISA에는 우리 학생들의 고질적인 취약점으로 지적돼 온 서술형 문항이 다수 포함돼 있어 이번 결과는 특히 고무적이다.

그렇다면 높은 성취도를 가능하게 한 요인은 뭘까? 무엇보다 높은 교육열을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게 치부로 여겨지는 사교육마저 외국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국민에게 적절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성'인데, 한국에서는 부모가 개인 비용을 들여가며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인력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 있으니 얼마나 바람직하냐고 부러워한다. 이런 해석을 접하면서 과외 망국병 등 사회악으로만 인식해 온 사교육을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능한 교사로부터 유능한 학생이 길러진다는 것은 당위에 가까운 명제다. 서양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므로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대학에 진학한다. 만성적인 교사 부족에 시달리는 서구에 비해 우리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교사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학교의 수업은 한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일종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교사에게서 수업받은 학생이 또다시 능력있는 교사가 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PISA 수학 전문위원으로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경험이 떠오른다. 한국의 실정을 설명하면 매번 의장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본에도 해당되느냐고 일본 위원에게 물었다. 한국보다는 일본의 입장이 더 궁금한 것이다. 그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우리는 2000년 PISA보다 2003년 PISA에서 순위가 상승한 데 반해 일본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요즘 일본 기업을 넘어서는 우리 기업의 기술적 개가를 보면서 유쾌하지 않은 그 기억이 저 멀리 뒤안길로 사라지는 느낌이다.

PISA나 TIMSS는 우리의 교육을 비춰보는 일종의 거울로, 순위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전체적인 성취도에 비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상위 5%의 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 성취도에 있어 학교 간 차이와 성별 차이가 큰 것, 교과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감이 낮은 것 등 부정적인 현상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결과가 국내에서 혹독한 비판만 받던 우리의 교육을 따뜻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전기가 됐으면 좋겠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