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0년] 판문점의 공산주의자들 (113) 이상한 낌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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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휴전회담 대표로 활약한 백선엽 장군의 이야기를 오늘부터 펼쳐갑니다.



미군은 지금도 그렇지만 강한 군대였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 당시만 해도 보잘것없던 병력을 전쟁을 치르면서 100개 사단까지 늘렸다. 100개 사단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1만5000명 이상의 병력을 지닌 사단에는 중화포와 전차, 수많은 공병 장비 등이 뒤를 따라줘야 한다. 시스템과 조직력이 없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작업이다.

미군은 ‘책임과 의무’가 분명하다. 부대 구성원들은 각자 진 책임을 철저하게 완수하고, 자신의 의무는 목숨을 내놓고라도 다한다. 그래서 평소엔 병사와 장교가 경직된 계급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분방할 정도로 의사를 교환하지만 전쟁 상황에선 강한 조직력으로 똘똘 뭉쳐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군대다. 게다가 그들은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막강한 화력과 장비를 보유했고, 풍요로운 보급을 바탕으로 힘을 얻고 있었다.

그 풍요로움은 한국군이 따라갈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그들의 힘을 빌려 군대의 화력과 장비를 보강하는 게 급했다. 아울러 정신적인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력도 미군에게서 배워야 할 입장이었다. 모두 절실한 과제였다.

그런 시점에 미 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한 제임스 밴플리트는 어쩌면 우리 국군에게는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 그가 중공군의 공세를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으로 꺾은 뒤 마침내 국군의 훈련과 조직에 착수한 것이다. 한국군으로서는 가뭄 끝의 단비처럼 반갑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 국군은 그에 따라 휴전 때까지 전선의 3분의 2를 담당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가고 있었다.

최근 발간된 6·25전쟁 화보집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서울셀렉션)에 실린 판문점의 초기 모습이다. 전설적인 종군기자인 존 리치의 작품이다. 휴전회담 장소인 판문점은 처음엔 막사 두 동으로 지어졌지만 점차 규모가 커져갔다. 이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됐다. 1951년 7월 초 시작한 휴전회담은 2년여 동안 길고 지루하게 진행됐다.

전선은 다소 소강 상태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국방장관이 강릉을 번갈아 가며 찾아왔다. 국군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늙은 대통령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했다. 1951년 7월 어느 날인가 그랬다. 강릉 비행장으로 자주 찾아 왔던 밴플리트 장군이 또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의 손에 아이스박스가 들려 있었다. 항상 먹을 것을 챙겨 다니는 장군다웠다. 그 안에는 맥주와 샌드위치 등이 담겨 있었다. “뭐 하시려고 음식을 직접 장만해 오셨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는 씩 웃으면서 “날씨도 더운데 해수욕이나 한번 하자”고 말했다.

마침 알레이 버크 제독도 로스앤젤레스함에서 뭍으로 올라와 있었다. 셋이서 함께 강릉의 해수욕장으로 갔다. 나와 버크 제독은 밴플리트 장군이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 중이었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모처럼 휴식을 즐긴 것이다. 그가 수영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밴플리트 장군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로스앤젤레스함에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잔뜩 있습니다. 버크 제독이 모시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대접하는 게 어떨까요?”

밴플리트 장군의 표정이 환해졌다. 둘은 헬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함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나도 둘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영문인지를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데 두 장군이 다시 헬기를 타고 돌아왔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느냐”고 내가 묻자, 굳은 표정의 밴플리트 장군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배가 파도에 심하게 흔들려 함상 착륙이 늦춰졌는데, 억지로 착륙을 시도하다 잘못해서 헬기가 바다에 빠질 뻔했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함의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어서 내가 한 제안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미 8군 사령관과 함대 사령관을 아주 위험한 순간에 빠뜨렸던 것이다. 진땀이 배어 나왔다.

그래도 밴플리트 장군은 대범했다. 얼굴만 조금 어두웠을 뿐 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밴플리트 장군은 이런저런 말을 이어가다 느닷없이 “백 장군, 당신 중국어 할 줄 아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중국어가 종류가 많다. 지방 사투리는 구사하지 못하지만, 표준어인 만다린(베이징 말을 기본으로 한 현재의 보통화)은 할 줄 안다. 왜 그러시느냐”고 되물었다. 밴플리트 장군은 “아니, 그냥 물어봤다”고만 할 뿐 다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밴플리트 장군은 사령부로 돌아갔다. 버크 제독도 별다른 말이 없이 로스앤젤레스 함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며칠 뒤 버크 제독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잠시 일본의 도쿄(東京)에 다녀올 작정이다.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였다. 버크는 일본엘 다녀온다고 했고, 밴플리트 장군은 뜬금없이 “중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어떤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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