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충해 없는 농작물 나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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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2면

병해충에 강한 농작물을 개발하는 것은 식물학계의 최대 관심사다. 유전자 조작도 하고, 우량종과 교배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그같은 새 품종을 개발해 왔다. 그러나 한두가지 병해충에 강할 뿐 갖가지 병에 두루 강한 품종은 개발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과학자가 그같은 '꿈의 품종'을 개발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알아냈다.

경상대 대학원 응용생명과학부 김민철(BK21사업단·사진) 박사는 바이러스뿐 아니라 곰팡이·박테리아 등 갖가지 병원균에 대항하는 유전자(MLO)의 힘을 키우거나 줄일 수 있는 물질인 '칼모듈린'을 찾아냈다. 의약품으로 치면 광범위 항생제의 효능을 좌우하는 물질이다. 칼모듈린이 식물체에서 각종 신호를 전달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MLO유전자가 보내는 신호를 중간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단지 사람이나 동물처럼 세포막에서 G단백질이 병원균의 침입을 알아채고 경보를 울린다고 추측해 왔을 뿐이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G단백질이 동물의 면역체계를 발동하는 단백질과 구조가 비슷해 식물에서도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金박사가 그같은 추측을 완전히 뒤엎었다. G단백질은 식물에서 광범위 항생제격인 MLO유전자와는 상관이 없으며, 칼모듈린이 그 유전자의 효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규명해 낸 것이다.

연구결과는 지난달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됐으며, 국제 과학학술지인 네이처 28일자에 발표됐다.

MLO는 식물에만 있는 단백질로 대부분의 병원균에 대항하는 면역체계를 발동하도록 유도하는 유전자다. 현재 벼·보리·밀 등에서 약 30여종의 MLO유전자가 발견됐으나 작동 과정을 알아내지 못했다.

金박사는 벼에서 도열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를 추출해 실험함으로써 이런 결과를 얻었다.

金박사를 지도한 이 학교 조무제 교수는 "칼모듈린의 작용을 강하게 하면 그만큼 병에 잘 걸리지 않는데, 이같은 원리를 새로운 작물 개발에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무제 교수와 金박사는 이번에 밝혀낸 연구결과를 활용해 도열병에 강한 벼 품종을 개발 중이다. 유전자를 변형해 병충해에 강한 농작물을 개발하면 그만큼 농약을 적게 뿌려도 된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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